사실 사고 날 뻔한 그 찰나에 ‘지금 죽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 시점부터 가끔 즉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자기세뇌를 하기도 했고요.
이틀 뒤 탈 없이 병원에 방문하고 체크를 마친 심리 검사지의 결과, 우울증이 맞았고 사람을 잘 못 믿고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의 그래프라며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전에도 이런 식으로 갑자기 우울한 적은 없었나요?”
“이 결과를 보니 상당히 힘들었을 거로 추측합니다.”
호르몬의 변화 등으로 보는 제 상태에 이론적으로 하시는 덤덤한 말씀이었지만 심심치 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 상태를 자세히 알아주는 기분이었거든요. 굉장히 희망적이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저만 생각하고 싶어졌죠.
그래서 그 당시 시작되었던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이 아이들의 건강에 집착하게 되어 2주 정도 집에서 데리고 있으려는 똥고집을 부렸습니다. 괜찮을 거란 저의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제 몸도 돌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니 되려 아이들이 제 눈치를 보게 되었죠. 동시에 저도 아이들의 눈치를 봤지만, 밖이 위험한 상태에서 보내기 싫은 생각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보고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오더니 과호흡을 하고 이내 어지러움을 느끼며 휘청거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부축되어 휴식을 취했지만 제 몸과 머릿속이 이미 제 것이 아닌 듯했죠.
울기도 하고 소리도 막지르고 그냥 미친 사람이었어요. 극 초기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미치더라고요. 뭘 해도 자족하지 못하고 계속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과 강제로 계속 어두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
그러다 핸드폰을 문득 봤는데 나에게 필요 없는 사람의 흔적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어졌어요. 다 지우고 보니 친인척과 제일 가까운지인들 빼고는 다 지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카톡의 단체카톡방이나 개인 대화방 등을 나가 자극의 최소화를 위해서 고민하다가, 얘기하고 바로 나가거나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가는 등 메신저 정리를 깔끔히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도 제 생각과 일치했습니다. 기대했던 게 있었는지 그 반응을 보고 더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해되는 부분이며, 가족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되뇌었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 손으로 일궈낸 가족에게서는 도움을 받지 못했고, 되려 상처를 받아 편하게 느껴야 할 집에서까지 극도의 불안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울증, 불안 장애 같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카페. 온라인 우울증 카페였죠. 몇 군데를 살피고 활동하다가 소외감과 이질감을 느꼈어요. 매일 방문하시는 분들과 실시간 채팅처럼 자기 말을 게시글로 올리는 분들, 거기에 반응해주고 친목을 다지는 분들 등등. 새로운 회원에게는 인사나 반응이 별로 없지만 아는 이에겐 화답하는 구조가 소외감을 크게 느낄 만했습니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있었습니다. 친목을 금지하는 카페를 찾았거든요. 거기는 모두 평등했습니다. 반응이 별로 없긴 했지만, 게시글을 올리고 댓글 하나라도 감사하긴 했어요. 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처음은 감사했지만, 점점 무플의 고통을 받으니 소통할 사람을 찾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