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럴 줄 알았다. 쯧쯧
남의 말을 모두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시해야만 한다.
왜 무시해도 괜찮은지, 그리고 왜 무시해야만 하는지 설명하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국내의 한 대학에 입학할 것이라고, 꼭 하고 싶다고 주위에 알렸다. 대부분의 친구는 별 관심 없었고 공부를 좀 한다는 친구는 비웃었다. 네가? 정확히 2년 뒤 그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자 비웃었던 친구의 평가가 달라졌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나는 달라진 게 없는데.
물론 대학 입학 사건을 통해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인식하는 것은 꽤 논리적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여러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 있는 대학이라고 해서 그곳에 너는 가지 못할 거야라고 하는 첫 판단은 비논리적이었다. 왜냐면 그 친구가 대학의 입학전형만큼 나를 다각도로 관찰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관찰한다고 해도 그의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전문성이 없으므로 근거가 없다면 의견에 설득력이 없다. 물론 비웃음에 근거는 없었다.
내가 만약 그 이야기를 듣고 위축되었다면, 어차피 안될 거라 생각하고 지레 포기했다면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그럼 저런 경우에는 무시하는 것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게 아닐까?
나보다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조언은 그저 흘겨보고 떠오르는 생각이다. 이것을 말하는 순간 되지도 않는 조언이 된다. 그나마 가족이라면, 꽤 많은 생각을 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일 수 있겠으나, 가족이 아닌 타인이라면.. 대부분 내가 말한 경우에 포함될 것이다.
깊은 사고가 포함되지 않은 생각을 말해주는 것은 대개 의미가 없다. 나는 나의 일이기에 관심이 많고 깊은 사고를 했을 것이므로, 그가 나에게 던지는 조언은 이미 내가 지나온 사고 과정의 하나에 불과할 확률이 높다. 저 전제를 만족한다면 본질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조언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남이 나를 평가한다면 무시해도 상관없다. 아니 무시해야만 한다.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넘어 오히려 힘이 빠진다.
잘 될 때는 모두가 다 맞다고 해, 안 풀릴 때는 다수가 아니래
팔로알토의 가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사고를 통한 주체적 판단보다는, 과거를 보고 일차함수적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남의 말의 근원이 깊은 사고가 포함되지 않은 일차함수적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무시하는 게 정답이다. 일차함수적 생각이라는 것은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 계속해 이어질 것이라고 추론하는 생각을 말한다.
타인의 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걸러 듣자. 그리고 어떤 좋은 말이든 나를 믿자. 나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결국은 승리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