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씨네 WeeCine May 07. 2018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2014, 올리비에 아사야스 작품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중년의 여배우 마리아가 과거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의 속편에 출연하며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의 이야기이다. 마리아는 그녀가 과거에 출연했던 작품의 속편 출연 제안을 계속해서 거절했었는데, 이 연극에서의 역할이 과거 마리아가 연기했던 역할과 정확히 반대된 입장의 캐릭터라는 것이 그녀에게는 커다란 부담이었다.



 과거 그녀는 젊고 매력적이며 자유분방한 캐릭터 ‘시그리드’를 연기했었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시그리드를 맹목적으로 사랑했지만 초라하게 버려지는 ‘헬레나’를 연기해야만 하는 것이고, 마리아는 솔직하고 분명하게 젊고 아름다웠던 시그리드로 기억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감독과 매니져 발렌틴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마리아는 결국 연극에 출연하기로 결정 하지만, 그녀는 연극의 대본연습을 하면서도 헬레나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발렌틴은 그런 마리아에게 헬레나가 가진 매력을 끊임없이 설명한다. 젊지만 파괴적인 시그리드보다,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지는 중년의 헬레나가 더욱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런 발렌틴의 해석을 비웃을 뿐이다. 



마리아는 20대의 빛나던 자아로부터 쉽사리 분리되지 못하는데, 도박을 하고 술에 취한 채 차를 몰면서 웃고 떠드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젊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진다. 여전히 마리아가 헬레나를 거부하는, 시그리드로 남고자 하는 모습인 것이다.




마리아는 발렌틴과 계속해서 대본연습을 진행한다. 그러는 와중에 발렌틴이 남자친구를 만나러 떠날 때 차의 뒷모습을 마리아가 바라보는 것과, 발렌틴이 자고 있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묘한 뉘앙스가 풍긴다. 이것은 언뜻 연극 속 헬레나가 시그리드를 사랑하듯, 마리아가 발렌틴을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며 현실의 마리아와 발렌틴의 관계와 연극 속 헬레나와 시그리드의 관계를 오버랩하여 보이게 한다.

 


게다가 그녀들의 대본 연습은 현실과 연극을 오가며 연극의 대화가 현실의 대화로 이어지는데, 시그리드가 헬

레나를 떠나는 부분을 연습하는 것에 이어서 발렌틴은 자신의 조언을 우습게 여기는 마리아에게 자신의 역할이 없으니 떠나겠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마리아는 헬레나가 시그리드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발렌틴에게 가지 말라며 집착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마리아와 발렌틴의 관계를, 마리아가 발렌틴을 사랑한다기보다 여전히 시그리드를 포기하지 못하는, 젊음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해석하게 된다. 발렌틴은 젊고 아름다우며, 마리아가 헬레나에 대한 자신의 틀에 박힌 사고와는 달리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품 해석으로 마리아에게 헬레나의 새로운 면은 계속해서 일깨워주었다. 아이패드로 가쉽을 보는 것도, 술에 취한 채 차를 모는 것도 발렌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발렌틴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젊었던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게 해주는, 그리고 그 시절에 머무르는 느낌을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듯 발렌틴도 마리아를 홀연히 떠났다. 마리아는 그녀의 젊음을 떠나보냈고, 마리아는 더 이상 시그리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마리아는 담담히 헬레나를 연기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위해 조앤(새로운 시그리드를 맡은 배우)에게 연기를 부탁하였지만, 이내 사과하고 철회한다. 마리아는 더 이상 시그리드에 집착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 속편 연극의 감독이 마리아를 설득할 때 이렇게 말한다. ‘시그리드였던 당신만이 헬레나가 될 수 있어요’ 이것은 아마 시그리드를 잃는 헬레나의 상실감과 이제는 시그리드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마리아의 상실감이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마리아 앤더스(줄리엣 비노쉬) 선글라스에 과거 맡았던 배역 시그리드가 비춰보인다.


여기서 나는 물음이 생긴다. 과연 마리아는 중년의 헬레나를 수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젊었던 과거를 포기하는 것일까. 인간은 어떻게 생애를 받아들이게 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