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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씨네 WeeCine Jan 05. 2022

구찌 가문 살인 사건과 탐욕에 무너진 환등상

[리뷰] ‘하우스 오브 구찌’

레이디 가가X아담 드라이버 압도적 연기 

화려한 비주얼보단 인간의 감정에 집중한 이야기


세계적인 하이엔드 브랜드 구찌.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구찌오 구찌가 설립하며 시작했던 이 명품 브랜드는 언제나 화려함을 상징했지만, 한때 청부 살인이라는 비극을 겪으며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으며 그 이름만으로 부와 명예, 권력과 스타일을 뜻했던 구찌는 어떤 이유로 저주와 살인, 탐욕과 갈등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을까. 할리우드의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를 그리며 철옹성 같던 명품 제국 역시 인간의 욕망에 의해 손쉽게 으스러질 수 있음을 말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이름, 구찌


화려한 파티에서 만나자 마자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한 한 젊은 남녀 파트리치아(레이디가가)와 마우리찌오 구찌(아담 드라이버).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점차 구찌 가문의 일에 개입하며 위태로운 외줄타기에 오른다.


마우리찌오의 큰아버지이자 구찌의 최고 경영자인 알도(알 파치노)와 구찌의 창의적인 괴짜 파올로(자레드 레토)를 밀어내며 구찌의 왕좌를 차지한 마우리찌오. 허나 파트리치아는 자신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이혼을 통보한 마우리찌오에게 증오와 저주를 퍼붓기 시작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감독 리들리 스콧)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명품 브랜드 구찌의 화려함 뒤, 숨겨진 치명적인 탐욕과 살인을 그렸다.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구찌의 화려함과 상류 사회의 약육강식, 천박함을 동시에 담은 작품으로, 레이디 가가와 아담 드라이버, 제레미 아이언스, 자레드 레토, 알 파치노와 셀마 헤이엑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에이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델마와 루이스’(1991)를 비롯해 ‘글래디에이터’(2000), ‘마션’(2015),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 등 다양한 작품을 내놓으며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이자 명장의 반열에 올랐던 리들리 스콧 감독. 다채로운 미장센과 감각적인 색채 활용을 무기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던 그는 자신의 연출 스타일과 꼭 알맞은 소재로 관객에게 돌아왔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일가의 화려한 일상뿐만 아니라 클래식한 기품이 넘치는 구찌의 세계를 그리며 보는 이의 심상을 장악했다. 구찌를 대표하는 여러 컬렉션부터, 이름 그 자체가 상징하는 거대한 유산, 세심한 고민이 엿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의상까지. 리들리 스콧 감독은 ‘비주얼리스트’라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게 이미지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특히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 조명을 활용해 인간의 탐욕을 악마로 상징화한 작업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찌오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심지어 암살을 모의할 때, 파트리치아를 비추는 번쩍이는 패션쇼의 조명들은 그의 얼굴을 마치 악마처럼 보이도록 한다. 기존 영화에서 아주 볼 수 없었던 연출은 아니나, 영화가 쌓아 올라간 감정선의 폭발과 더불어 카메라의 대담한 활용이 해당 장면을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그러나 높은 비주얼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임에도 ‘하우스 오브 구찌’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충분히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미장센들 덕분에 눈이 즐거운 작품이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을 향한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진 못한 이유다. 그의 전작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생생한 현장감과 묘사는 여전하지만, 강렬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볼거리가 다양한 것은 분명하나, 특별히 뇌리에 각인되거나 흠뻑 빠져들 만큼 아름다운 묘사는 없다.


이는 감히 짐작하건대 리들리 스콧 감독이 보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해 이야기를 꾸려간 탓이 크다. 기존 작품들에서 다소 평이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위에 풍부한 볼거리를 덧입혀 관객을 매혹시켰다면, ‘하우스 오브 구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영화는 약간은 어지러울 만큼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카메라와 느리다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편집 호흡, 과감한 클로즈업과 조명 활용 등으로 인물의 표정과 제스쳐, 인물 사이의 거리 등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물론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생동감이 넘친다. 그들의 감정은 무엇 하나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관객의 내면을 자극한다. 그들이 쏟아내는 욕망과 질투, 탐욕과 오만, 혐오와 경멸이 끊임없이 스크린 너머로 넘실댄다. 상류 사회의 화려함과 그네들의 추악함이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영화에 몰입하도록 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레이디 가가와 아담 드라이버를 비롯한 할리우드 대표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는 이를 가능케 하는 가장 큰 힘이다. 자레드 레토는 그가 출연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고, 알 파치노는 천박함과 거인의 진중함을 자유롭게 오가며 극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아담 드라이버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탐욕의 구덩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냈고, 레이디 가가는 말 그대로 욕망의 화신으로 분해 거침없이 스크린을 압도했다.


허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우스 오브 구찌’는 리들리 스콧 감독을 향한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비주얼이 아닌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 만큼 보다 세밀한 이야기 구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화는 구찌 가문의 실화를 담백하게 옮겨오는데 그쳤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긴장감은 사라지고, 인물의 감정선과 동화되기보다 더욱 멀어지게 된다. 긴박함도, 널뛰는 감정도, 구멍을 메울 속도감도 없으니 영화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담백하기에 현실적이고, 그에 따라 더욱 집중해 따라가게 되는 부분 역시 분명히 있다. 한때 굳건하게만 보였던 구찌라는 현대 사회의 환등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구찌 가문 사람들의 탐욕에 의해 갈갈이 찢긴다. 품위와 여유, 만족과 사랑을 잃고 오로지 눈앞의 더 큰 부를 위해 질주할 때, 파멸만 존재한다는 것은 비단 구찌에 국한될 이야기는 아닐 터다. 


영화는 그렇게 탐욕에 휩싸여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 한 가문의 비화를 그리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마우리찌오가 죽는 시간, 파트리치아는 자신의 공책에 'paradise'(낙원)라고 쓰며 자신의 꿈, 유토피아, 천국을 얻은 양 행동하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잔인하고 처절하며, 황량한 현실 뿐이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요컨대 뛰어난 비주얼적 완성도를 자랑하고 재미 역시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을 향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작품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한 미장센이나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할리우드 배우들의 명 연기 향연을 즐길 수 있어 15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함은 없다. 범작과 명작 사이, 수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작품이겠다.


개봉: 1월 12일/ 관람등급: 15세관람가/감독: 리들리 스콧/출연: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 셀마 헤이엑/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러닝타임: 158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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