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에너지를 인식하자 변화되기 시작했다. -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에너지'라는 단어에 때로는 신비주의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신한다. 인간은 결국 에너지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이 흐름은 단순히 생물학적 에너지가 아니다.
삶을 통째로 관통하는 직관의 힘이자, 존재의 파동 같은 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무의식’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이는 ‘운명’, ‘사주’, 혹은 ‘우주와의 연결’이라 부른다.
명상으로 떠오르는 인도 전통에서는 이를 ‘차크라’라고 부르며,
그 감각의 흐름을 깨우고 다스리는 수련을 이어간다.
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심리학에서부터 인문학, 과학, 종교, 영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다 보니
각 분야의 학자와 사상가들이 서로 전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꾸준하게 탐독 하다보면, 그 모든 말들 속에는 한 방향의 흐름,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에너지’**를 이야기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가 점점 연결되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듯한 통찰이었으며, 우주와 나 사이와의 연결됨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나는 이 깨달음을 통해 과거의 나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외부 자극에 너무나 쉽게 반응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 예상치 못한 사건 하나에도
쉽게 기분이 가라앉고, 자존감은 이리저리 끌려다녔으며,
나도 모르게 나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식의 실수를 반복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했지만,
내면은 늘 불안정한 바닥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에너지'라는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감정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흐름이라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내가 감지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믿을 수 없는 자유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제 내 에너지를 느낀다.
조금 더 피곤한 날에는 무리하지 않고,
기운이 가라앉는 날에는 조용한 산책이나 음악, 책으로 내 안을 다독인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묻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존감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크하고 회복할 수 있는 나만의 능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슬프고 외로울 수는 있어도, 바닥에 주저앉진 않는다.
나는 내 안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내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읽고 회복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어쩌면 인생은 ‘나의 흐름’을 온전히 감지하고, 존중하고,
끝내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언어,
그것이 바로 ‘에너지’였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