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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의 말들

나눌 수 있는 존재

나란 무엇인가

by 엄민정 새벽소리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 individual' 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 수 있는 dividual'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히라노 게이치로, 나란 무엇인가>


한 단어로 자기소개를 하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나는 좀 아득해질 것이다.

누군가는 직업으로, 어떤 이는 MBTI로 자신을 소개하겠지. 특별한 수식어가 없는 나는 나를 닮은 어떤 형용사 하나를 찾아내려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인가. 그것은 진정한 나인가. 뒤늦은 사춘기라고 하기엔 질문은 진지하고 난해하다.


카톡을 열면 아무 때나 연락해도 되는 이들이 한 줄로 예쁘게 서있다. 친구 목록의 숫자를 가만 바라보다가, 나와 그 각각의 개인마다의 관계를 가늠해 본다. 초등 친구와 대학 동기를 대하는 나의 얼굴은 좀 다르다. 전자는 아무런 격이 없다면, 후자는 아무래도 내가 자란 만큼 때가 꼈다. 만일 내가 대학 친구와 만나는 자리에 초등 친구를 동반한다면 나는 그 가시방석을 어찌할까. 그 둘의 간격에 나는 어떤 얼굴을 뒤집어써야 할까. 아, 다시 생각해도 친구는 각자 만날 때가 제일 좋다.


대체 얼굴이 몇 개야?

카톡 명단의 수와 내 얼굴의 수는 동일하다. <인간 본성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그것을 사회성이 발달이라고 정의한다. 다른 사람에게 하듯 내게도 해라. 내 엄마의 말씀이다. 나는 반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평생을 행운에 기대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사회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심적 반문은 계속 이어진다. 엄마를 대하는 얼굴은 진짜이고, 낯선 이를 대하는 얼굴은 가짜일까. 초등시절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나만 나인 것일까. 듣기 싫은 누군가의 일장연설을 미소로 들어주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닌 것일까. 대체 나란 무엇인가.


'진정한 나'를 찾자는 매스컴의 문구가 오히려 사람을 방황으로 이끈다. 사람은 원자처럼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사람은 분자에 가깝다. 많은 원자가 모여있는 분자. 개인個人이 아닌 분인分人. 나를 분인으로 규정하는 것만으로 우린 훨씬 자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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