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부자
몸의 곳곳에 흉터가 있다.
상처가 다녀간 흔적으로 남아있는 자국은 아무리 미워해도 평생 떠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민감하지도 않아서 흉터 레이저 따위 한번 쏜 적 없고 무던히 보듬고 산다. 나무에게 가지가 잘려나가 생긴 옹이가 있고, 고대의 도자기 유물은 버틴 세월만큼 촘촘한 균열이 있다. 내 몸에는 나의 역사가 있다.
19살, 고향집 마당 중앙에 금이 간 바닥을 시멘트로 수리했다. 행여나 신발자국이라도 남길까 엄마는 닭장 그물로 넓게 덮어두었다. 저녁을 차려먹고 깜깜해진 밤에 집 화장실을 놔두고 왜 마당 화장실을 가려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날 밤 밖으로 달려가던 나는 철사를 피복한 재질의 날카로운 그물에 걸려 맨질맨질하게 미장한 시멘트 바닥에 사정없이 추상화를 그리며 고꾸라졌다. 무릎의 살이 철사에 긁히고 바닥에 쓸려 살이 여러 줄로 깊게 벌어졌다. 평소 웬만해선 병원을 안 가는 엄마가 병원에 가서 꿰매자고 했으니까 그 상처는 내가 훗날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깊고도 컸다. 마취가 무섭고 바늘이 무서웠던 나는 봉합 수술만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이었으면 파상풍 주사에 각종 항생제 치료로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그 시절 나는 새살이 돋는 마데카솔 연고 하나로 이겨냈다. 염증이 나고 회복이 더뎌 교복치마 끝자락은 고름이 굳은 채 여러 날 붙어있었다. 새로 돋아난 얇고 부드러운 살점이 무릎을 다시 감쌌다. 연한 색깔에 살짝 튀어나온 새살은 우툴두툴하여 손으로 만지고 놀기 좋았다.
29살, 솟은 배를 안고 뒤척이던 어느 밤, 양수가 흘러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양수가 다 빠진 뱃속에서 미동이 없었다. 수영장에 물이 순식간에 다 빠져버린 후의 황당함, 그 난감한 감정을 아이는 그곳에서 처음 느꼈을 것이다. 얼른 수술을 해서 아이를 꺼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그간 자연분만을 위해 배우고 연습한 호흡법과 명상이 무의미해졌다. 고집을 부려봤자 안에서 물기 없이 마른 아이가 순탄하게 나올 리 만무했다. "비키니 입을 수 있게 해 줄게." 하며 안심시키던 선생님은 노련한 솜씨로 꼼꼼하게 나를 이어 붙여주셨다. 살이 아물고 흉터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굳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 여겨 관뒀다.
사람은 누구나 배꼽이라는 흉터를 안고 태어난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는 반박불가한 흉터를 만들며 태어났고, 내 몸에는 아이가 나왔다는 숨길 수 없는 흔적이 생겼다. 엄마가 되는 관문을 감내하고 통과한 증거 덕분에 엄마는 살다가 문득 초심을 기억한다. 붉기가 빠지고 희어지며 아이가 자라남을 흔적으로 느낀다.
39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가슴에는 흉이 생기고 겨드랑이 밑으로 5cm의 직선 흉터가 내 몸에 추가 됐다. 드레싱을 하러 가슴을 풀어헤치며 소독약의 따가움에 피식 웃었다. 흉터가 대체 몇 개야. 흉터 부자다. 봉합과 함께 시작된 상처의 회복은 일주 후 실밥제거로 한 고비를 넘긴다.
"흉터치료 레이저는 6개월부터 하시면 됩니다."
이 시기 나는 몸에 난 흉터 따위에 관대했다. 문제는 마음에 있었다. 좌절은 희망이 되었다가, 희망은 다시 슬픔이 되기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시로 돌변하고 쉼 없이 반복하는 부정적인 마음 상태를 가만히 붙잡고 토닥이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실제 벌어진 일보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대해석하여 스스로를 괴롭힌 시간이 평생처럼 길었다.
말 못 한 다른 흉터도 많다. 그럴 리 없겠지만, 누군가 내게 흉터 부자 타이틀을 주고 싶어 한다면 거부하지 않겠다. 평생을 쌓아온 흉터는 나의 살아온 역사를 대변한다. 다행인 건, 상처는 쓰리고 아팠지만 흉터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흉터를 흉한 것으로 치부하여 가리고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의 일부가 되어 너의 자체가 이미 나임을 인정해 버리는 게 속 편하다.
때로는 몸의 상처에 마음의 상처가 동반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상처도 의미 없는 상처는 없다.
세상은 상처를 감추고 흉터를 지우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게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면 당신의 아픔이 자리할 곳은 어디인가. 아픔이 길을 잃었다.
내 곁에 꼭 붙어 줄곧 내 시선을 바라던 너를 이제 내가 눈을 맞춰 따뜻하게 매만진다. 여린 너에게 '흉터'라는 사나운 이름표를 떼고 '상흔'이라는 보드라운 명찰을 새로 달아준다.
날이 좋다가 비가 온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모른 척, 무심한 척하며 회피했던 내면의 시선을 마음속 그 자리에 가만히 얹어본다. 아픔의 기억이 끝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