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독배는 내가 마시고 상대가 죽길 바라는 것과 같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끝없이 나를 힘들게 해 오랜 시간을 미워했다. 이해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연습도 했지만 쉽게 곁을 내주지 않던주인공.
애증의 '수학'이다.
중학교까지만 수학을 좋아했다. 재밌어하기까지 했다. 닭이 산란의 고통을 겪으며 꽤괙(산란 전의 소리) 소리와 함께 나온 동그랗고 예쁜 달걀처럼, 복잡한 계산을 거쳐 어렵게 나온 답에 뿌듯함과 성취감을 즐겼다. 답안지를 맞춰보며 줄줄이 용수철로 이어지는 동그라미에 느끼던 희열이 있었다. 맞추는 문제가 많아질수록 자신감이 넘쳤고, 그것은 자연스레 공부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니 내 삶에 그런 날도 있었다.
때는 고등학교 수학 시간,
선생님의 얼굴색과 기분을 살피기에 바쁘다. 책을 겹겹이 쌓고,그 위에 방석을 올리고, 분위기를 다시 한번 살핀다. 상황 파악이 끝남과 동시에 무게 중심을 서서히 머리로 옮기면 고개는 떨어지고 허리는 완만하게 구부러진다.
낮잠 자기 딱 좋은 시간이다.
"오늘은 24일이니까 24번! 나와!."
칠판 앞에 나가 분필을 잡는 얼굴이 새하얗다. 칠판을 마주 보고 있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부단히 애쓴다. 짧고도 긴 시간을 지나 선생님 얼굴을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부끄럽고 싫고 밉고 무서운 감정이 동시에 몰아쳐 머릿속을 엉킨 용수철로 만들어 놓는다. 당구채를 들고 위협하는 선생님을 보며 수학은 내게 당구채였고 공포였다.
시간이 흘러도 그 시절 기억엔 여전히 초연하기 어렵다. 쟤는 수포자야.... 주홍글씨 같은 낙인이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 후, 수학을 포기하면서 얻은 고난이 대단했다. 수포자는 대학을 못 간다는 말이 떠돌던 때였다.
아이를 교육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과목은 당연히도 수학이다. 내게 어려웠던 과목이 내 아이에게도 어려운 것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의미도 되었다.떠올린 방책으로 한 학년 미리 교과서를 준비해서 EBS로 선행을 시키고 있다. 나이에 맞는 수업이 맞다고들 하지만 수학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일말의 의심이 없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 밑바탕을 꼭 만들어줘야 했다.
수포자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위를 마주칠 때는 더욱 긴장한다. 방정식이 그 첫 번째이고, 인수분해와 미적분의 큰 산이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잇는다.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일련의 과정을 촘촘히 구성해야 했다.
문제를 풀 줄 아는 것과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아이는 나와 수학 공부하는 시간을 지겨워했다. 그 시간을 피해 다녔고, 내가 수업시간을 잊으면 아이도 잊은 척했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놓고 가르치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수학 수준이 예전 같지 않다. 중학교에서 배웠던 방정식이 초등 고학년에 벌써 나오기 시작한다. 방정식을 배우지 않았는데 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가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땐 정말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답이 없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워오라는 의무 회피적 말을 습관처럼 하고 있었다.
EBS에는 좋은 수업이 많다. 그중 내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보는 수업은 '정승제의 50일 수학'이다. 예전의 나처럼 수학을 싫어하며 버텨온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동아줄과 같은 수업이었다. 늦은 나이란 없다는 생각과 더 이상 수학을 미워하며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지체 없이 교재를 준비하고 여정을 시작했다. 십여 장의 강의를 끝낸 지금, 문제 풀이의 과정 속에서 생각의 회로를 정리하고, 도출된 정답에서 느끼는 기쁨이 오랜만이어서 새롭기까지 하다. 그 사이, 미워하는 마음이 사그라들며 그 자리에 호기심이 몰래몰래 채워지고 있다. 수학을 대하는 마음이 편안해지니 데면데면하던 수학도 조금씩 친근해지는 느낌이다. 아이가 어느 부분에 어려움을 느낄지 미리 짐작할 수 있고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스러운 마음도 생긴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돌아서기까지 걸린 시간이 20여 년이다. 조금 친해졌다고 미워하던 마음이 사랑으로 바뀔 수는 없지만 애증의 동네 꼬마가 친구로 보이기 시작했으니, 후에는 혹시 남자로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