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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Dec 17. 2023

몰입


 밤이 너무 깊다. 나는 외롭지 않은 혼자이고, 잉크는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잉크로 무엇을 쓰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천장에 둥근 달 같은 전등이 달려 있어서, 달빛 아래인 것처럼 눈은 부시다.


 그래. 쓰지 않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쓰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럼 너는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존재인 걸까. 너는 그런 사람인 걸까. 자문하면서 동시에 귀를 기울이지만 당연히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나는 내가 대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물셋에 나는 허무를 알아버린다. 거창한 허무가 아닌, 조촐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이 허무는 요즘 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의 글을 새롭게 쓰면 바로 이전에 쓴 글이 무의미해진다. 아니 이것은 너무 극단적인 발언이며 사실에 가깝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에 가까운 것에 섬세하게 다가가보자. 그래. 하나의 글을 새로 완성하는 순간, 이전 글에 거처하던 나는 그곳을 버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나의 집. 내면의 풍경은 매일 감독이 교체되는 영화 같고, 감정의 부드러운 이동을 따라갈 만한 속도가 펜에 부여되지 않는다. 고도의 정신적 노역을 통해서 배출한 통쾌한 자기 반역의 서사는 고작 몇 시간 후에 수치스러운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결국 보여지지 못한다. 진정한 나를 찾은 것만 같은 글에서도 나는


 자아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성숙된 열매들이 잔뜩 맺힌 평화의 과수원 같은 곳에서 나의 방황도 잠시 멎으려니, 그렇게 생각하지만 언제나 내 생각은 틀리다. 풍족의 과수원을 제 발로 떠나서 척박한 폐허로, 사막으로 나는 간다. 나는 하나의 나에서 또 하나의 나로 이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진찰하는 것이 정답일까. 이제 나는 정답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엇을 내놓아도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 심정은 허무라고 검사되지만, 그 허무가 나는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정답은 어차피 없으니까, 좀 더 자유롭게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펜을 휘갈겨도 되지 않을까. 모든 것은 정답이 아니지만 동시에 오답인 것도 없다. 나처럼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온, 평범한 교육수준과 인성의 사람은, 감탄을 부르는 무언가의 정답을 쓸 수도 없고 반인륜이라는 완전한 오답도 부드럽게 피해 간다.


 그래. 그냥 주관이 있을 뿐이다. 정답도 오답도 아닌 존재라는 것은 사실 얼마나 자유스러운 존재인가. 나는 자유롭다. 나는 폐허의 봄이나 아수라장의 봄과 같은 단어의 조합을 좋아하는 심장의 기준으로 내부를 관찰할 뿐, 내부의 것에 정답이나 오답의 표시를 남기지 않는다……. 적어도 나 하나만은, 나 자신에게 고정적인 인상을 낙인찍지 않고 무한한 이동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살라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후회는 감당해야 할 짐이다.


 침소리 낼 줄 모르는 벙어리 시계는 어둠 속에서 새벽 다섯 시 반을 가리킨다. 창문 밖 멀리서 아침이라는 거구의 육체가 새벽 내내 굽힌 채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려는 낌새가 보인다. 나는 이 순간 어이없게도 배가 고파온다. 이대로 하루치의 안면 없이 탐스러운 아침 식사로 오늘을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오늘 꾸어야 하는 꿈에 지각해버린 상황이지만, 없는 꿈으로 치부할 순 없다. 꿈의 주인이 결석한 꿈에서는 지금 작은 혼란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주연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존재를 관찰하는 조연으로서 내 꿈에 출석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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