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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Dec 20. 2023

부수어버리는 이유


 낯선 음악의 숲을 헤매다가 나는 결국 익숙한 곡으로 돌아오고 말아. 낯선 얼굴들과 웃으면서 밤을 보내도 가슴은 정든 얼굴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음악은 강력해. 없는 기억을 불러오고, 내면의 평화를 망쳐놓고, 또 다시 나를 고독한 몰입의 늪으로 빨아들여.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어.


 이 새벽에도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 맨정신이 좋거든. 온전한 내 생각으로 공간을 칠하고, 내가 있는 위치를 감각하는 게 좋거든. 나는 부끄럽게도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 없어. 나는 부끄럽게도 남과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어. 왜일까. 새벽은 광야처럼 아득히 펼쳐져 있는데,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아.


 이해를 당한다고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이해를 받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마음을 전부 읽히는 것이 싫어졌어.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이 나를 더 많이 이해하고 있으면 현기증이 나. 후회가 밀려와. 나의 경솔했던 발설에 대해. 나는 참다운 인간을 꿈 꾸고 있어. 그런데 나는 나의 이상에 닿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야. 그래 결코. 나는 감당할 수 있는 기대만을 떠안고 있고 그것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랑의 관심이지.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닌데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어. 나는 그래서 늘 미안해.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늘 더 큰 것 같아서.


 받고 있는 사랑에 대한 나의 마음은 고마움이야. 애틋함이야. 거기에 간절함은 없어. 간절한 마음은 나의 사랑이 주는 사랑일 때 비로소 피어나는 것 같아. 철없는 발언이지.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철없다는 말로 폄하하면서 나 자신에게 어린 아이의 이미지를 덮어씌우고 싶지 않아. 나는 성숙하지 않을 뿐, 철없는 사람은 아니야. 내가 외부에 내놓지 않고 최후까지 갈비뼈 밑에 간직할 비밀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전부를 뺏기고 싶지 않아.


 나도 결국 나를 방어하고 남을 공격하는 인간인가봐. 그렇게 보잘것없는 본능을 가졌나봐. 나의 공격은 직접적인 위해가 없지만, 외부에 대한 엄연한 분노.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말은 내가 정말 진심을 다해서 분노를 표출한 적이 없다는 뜻이 되지. 내가 진심으로 분노하면 무슨 모습일까. 위엄 넘치는 사신의 모습이 돼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칼로 상대의 목을 취할까? 아니면 네 개의 포악한 발을 가진 개과의 짐승이 될까. 아니겠지. 나는 미친 생각을 하고 있어. 나의 분노가 뜨거운 절정에 도달한 순간에 그 분노가 알 수 없는 작용으로 인해서 정열로 방출되어버리는 일은 없을까.


 무시무시한 키스. 포악한 분노가 이글거리는. 아 나의 두뇌의 일부분은 얼마나 썩었는가. 나의 두뇌의 일부분은 죽은 나의 우상이 찾아와도 구제할 수가 없을 거야. 나를 내려놓고 남을 감싸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되면 지금보다 내 인생이 고달플까? 땀구멍을 수박 크기만큼 늘리는 것처럼 힘들고 고된 일일까. 그게 정말 행복한 일이면 어떡하지. 나도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굿나잇이 안 돼. 나는 굿나잇을 해본 지 꽤 됐어. 그래도 나는 그다지 피곤하지 않아.


 앵두꽃이 만발하다못해 애처롭게 휘날리는 언덕에서 망가지는 봄을 보고 싶어. 봄만 되면 볕이 안 드는 곳에서 여러 사람이 망가지는 거 알고 있지. 그 가여운 사람들은 겨울을 보듬어주는 따뜻한 인간들이야. 그런데 봄은 자꾸 그 착한 사람들을 뱉어내. 나는 이제 내 눈앞에서 엉망진창이 되는 봄을 보고 싶어. 봄에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존재가 아니야 바로 봄 그 자신이지. 봄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은 비밀이 아니야. 나는 봄을 사랑하고 싶어. 불행한 사람을 뱉어내지 않는 봄을 말이야.


 새벽에 꿀 꿈은 낭만적이지 않을 것 같아. 부수어진 새벽 속에서 나는 희망을 생각하게 돼. 나는 희망이라는 글자에서 내일이란 발음을 발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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