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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Jan 22. 2024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


 근 삼 년 만에 얻은 해방 기간. 잠수 기간.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 단 일주일.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다. 동시에 보잘것없는 찰나인 것 같기도 하다. 하늘은 내가 일주일의 자유를 얻자마자, 식탁에 앉아 책을 펴고 영혼과의 교감을 시작하자마자 한 개의 시련을 던져주셨다. 자그마한 비극. 나는 훌쩍거리면서 도대체 날 좀 가만히 놔두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속으로 투덜투덜, 못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반성하는 의미로 나의 추태를 기록한다.


 자그마한 비극.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 이런 문제가 제일 싫다. 나의 선택이, 가까운 미래의 나의 모습과 감정과 상황을 좌지우지한다는 게 유독 선명히 다가오는 그런 문제가. 그리고 보통 이런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나는 어느 쪽이든 선택하긴 할 것이다. 지금은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 그나마 마음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선한 연푸른색의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일주일 지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하지만 한 점의 먹구름 정도는 안고 가줄 수 있다. 나는 관대한 사람이니까.


 이 얘긴 이제 끝. 그만.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괜히 나의 실제 기분보다 우울한 글이 될까 걱정이니까 그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행복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거울 속에서 가만히 바라보다 휙 몸을 돌려 집을 나갔다. 내가 휙 몸을 돌려 거울 앞을 떠난 순간에, 텅 빈 거울 속에 어떤 남자의 얼굴이 안개처럼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햇빛을 못 봐서 창백한 피부, 무심하게 배치된 반듯한 이목구비, 더럽혀진 적 없는 산호색 입술, 그리고 잔잔한 검푸른 눈동자. 영혼이 따스한, 가짜 냉혈한의 눈동자. 그 눈동자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문을 닫고 나가는 나의 모습을 여유롭게 그러나 어딘가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됐다. 헛소리는 나의 취미이다.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이 일렁거리는 참된 헛소리를 찾기 위해서 매순간 애쓰고 있다. 덧없는 혼잣말이 어쩔 땐 유익한 대화보다 낫다. 유익한 대화를 나눌 땐 다른 사람과, 나의 사랑스러운 말상대와 어우러져야 하니까. 즐거우면서도 힘든 일이다. 유익한 대화를 나눌 때, 물론 대화가 유익하기도 참 힘들지만,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말상대가 이 대화를 유익하게 끌어가기 위해서 수많은 진심을 반려하고 말을 고르느라 애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의 말을 버리고 다듬고 고르는 사람을 어쩌다 보면, 사랑스럽다. 나도 같이 애쓰고 싶어져서 더 섬세한 표현을 고르고, 성에 낀 유리창 같은 흐릿한 생각을 뽀득뽀득 닦는다.


 그러다 자칫하면, 나도 진심이 아닌 말을 툭 뱉는다. 물론 섬세하고 다정한 말이라서 상대는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나만이 느낄 수 있다. 그 야릇한 위화감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내가 거짓된 문장을 뱉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바로 김이 팍 새버린다. 더는 대화가 즐겁지 않고 하염없이 침묵하고만 싶어진다. 그래서 진짜로 침묵한 적도 있다. 아마도 있을 것이다. 


 나의 피부는 너무 하얗지만도 않고, 너무 잿빛이 돌지도 않는다. 진실한 사람의 피부색이다. 적어도 세상을 진실하게 대하지 못하는 순간을 부끄럽게 느끼는 사람의, 피부색. 나는 천연적인 홍조는 없지만, 난감하거나 창피하면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설레거나 심한 수줍음을 느껴서 뺨이 붉어진 적은 없다. 한 번도. 살면서 한 번도 심한 수줍음을 느낀 적 없다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차라리 거울 속의 그 남자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소심하게 거울 속에서만 머물지 말라고. 오늘 나는 드물게도 뺨이 붉게 물들었다. 칼바람 때문이다. 밖은 너무나도 추웠다.


 늦은 점심으로 먹을 만한 걸 사려고 짧게 외출했던 것이라 낭만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너무할 정도로 낭만이 없는 외출이었다. 어디를 봐도 생활과 만족이 있었고, 드물지만 사랑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남의 인생. 그들의 생활 속 온기가 나에게까지 전염되지는 않는다. 물론 낭만의 공기를 두른 사람은 그런 특별한 인간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들 낭만을 잃은 채 추위에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춥고 당신들도 춥구나. 나만 춥고 당신들은 따듯한 게 아니라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호등의 붉은빛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에게 바람의 공격이 가해지지 않았다면. 살인적인 칼바람은 옷에 감싸이지 않은 나의 얼굴과 손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샌드위치는 아주 맛이 좋았다. 나는 냉혹한 자연의 날씨로부터 도피해 인공의 온기가 가득한 집안에서 배부르고, 안정적인 기분으로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불안정한 해방. 그래서 더욱 값진 시간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모두를 아껴줄 것이다. 나의 애정이 소중한 사람도 있고, 자기 전에 떠올릴 정도는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뭐가 중요한가, 당분간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으리라. 누구를 만나든지, 내 심장에 푹 꽂힌 온도계의 붉은 에틸알코올 선이 그 가는 선이 찍을 수 있는 최고의 높이는 위험수준 한참 밑이니까, 애정의 순위 따위 매기지 않으리라. 모두 내가 외로울 때 필요한 사람들이다. 애절한 감정은 없지만, 이런 나도 애정을 담뿍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애정을 받아주도록. 안 그러면 고독해서 살 수 없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뭔가, 너무하다고 느껴지는 사람 있나? 있다면 나는 흥분할 것이다. 이유를 밝히지 않고 그 사람에겐 두 배의 애정을 쏟을 것이다. 어쩌면 세 배의, 어쩌면 네 배의, 어쩌면……. 요즘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독서를 하니 좋다. 텅 비어 있던 내면이 조금씩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춥고 잔인한 날씨도 마음에 든다. 집안에서 꼼짝 못하고 글을 쓰고 책만 읽어도 씁쓸한 기분이 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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