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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Feb 06. 2024

그림 달력의 봄


 또래들과의 추억이 없다. 여기서 나의 내적 빈곤이 출발된다. 학창시절은 귀찮은 일들 뿐이었고 나는 친구들과 미친 짓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졸업했다. 가족과의 추억이 대신 메워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냐고? 전혀 아니다. 가족은 또래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다. 뻔한 말을 덧붙이자면 나는 친구가 없는 게 아니다. 믿을 수 있는 친구가 한둘은 있다. 그리고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외로움에 빠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단지 학창시절의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을 뿐이다. 그게 인생의 흠이 되지는 않는다. 친구는 지금부터라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 솔직히 나는 현재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잘 하는 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이상은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안 좋아하고, 전화로 이야기하는 걸 어색해 하는 이 체질은 우정을 나누는 데 확실히 방해가 된다.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횟수를 늘려야겠다. 그러면 친구들도 나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고 내가 그들을 언제나 그리워하며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줄 것이다.


 아니라면, 나 혼자 슬프고 말지 뭐. 옆에 앉은 아줌마가 아까부터 너무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고 계신다. 자기 손목을 떨어뜨릴 듯이 파닥파닥 흔들고 있는데 이 행동을 지금 거의 십오 분이나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왜 저러시는 것일까?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자리를 뜨기 전까지 아줌마는 그 기이한 행동을 멈추지 않으실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왼쪽 시야를 헝클어뜨리는 저 방해동작 때문에 소설의 세계로의 접속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그 결과 나는 이런 시시껄렁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주머니 그러다 손목 다쳐요.


 나는 대학생이다. 오는 삼 월에 학교로 돌아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교육이라는 호사를 누리겠지.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 원래 내 말투가 아니다. 분명히 누군가의 말투가 전염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아주머니의 기행은 이어지고 있다.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신다. 나는 몇 년 동안 글을 쓰면서 손목 건강이 안 좋아져서 저렇게 오래 흔들라고 해도 못 하는데, 아주머니의 손목은 아직 정정한 것 같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아주머니 그러다 손목 떨어져요. 됐다, 됐어. 어차피 직접 말해줄 것도 아닌데 그만하자. 그 사람도 운이 나쁘다. 하필이면 글감이 떨어진 작가지망생 옆자리에 앉아서 순간의 재료로 쓰이다니.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특히 내성적인 편에 속하는 나는 세상의 존재들을 잡아 글 속에 가둘 때도 신중을 다하기 때문에 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당사자 자신조차 하찮게 여기는 순간을 슬쩍 훔쳐다 기록한다. 인기 없는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관심을 요구하지 않는 것들에 끌리게 된다. 물론 이 아줌마가 나를 끌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아줌마의 기이한 행동을 굳이 쓴 것은 지금 내 신경이 무척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소심한 복수다. 소설의 세계로의 접속은 오늘 불가능할 것 같다. 뭐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소설을 쓰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 되니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실제 세상보다 소설 세상의 존재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나를 감동시키는 실제 세상의 존재들이 있지만, 그 수는 너무나 적어 늘 나는 외롭다. 하지만 소설 세상에서는 소심한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사람을 품에 넣을 수 있고 또 멋있게 담배를 피운다. 방화 정도는 껌인 무모한 담력을 가지고 있고, 꼴같잖은 부류의 인간과 이미 짝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애간장을 태울 수 있다.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이다. 하하 웃어버리고 싶다. 나는 아무래도 조금 기분이 좋은 듯하다.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져서 그런가. 분홍 꽃잎이 휘날리는 화려한 봄의 얼굴보다는, 작은 풀꽃들이 산들바람과 수다 떠는 평온한 연두색의 들판이 보고 싶다.


 작고 귀여운 노란색 풀꽃들. 벌레 한 마리 없는 들판. 나는 벌레가 싫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순간 아무리 지극한 자연의 낭만이라도 다 깨져버리고 만다. 아무튼, 벌레 한 마리 없는 들판. 흘러가는 뭉게구름. 그리고 나. 바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뺨을 간질이는 상냥한 봄바람. 나는 다 상상할 수 있다. 그림 달력의 봄은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우울한 밤에도 변함없이 환한 정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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