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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Apr 02. 2024

왜 쓸까.


 정말로 사랑하는 것, 아니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입으로도 내지 않고 글로 옮기지도 않는다. 나는 이미 그것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왜곡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가피한 왜곡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흠모의 대상을 떠올리려고 애쓰고, 그렇게 해서 손에 잡힌 주제는 봄, 명저들, 식물 같은 것들이다. 


 왜 쓸까? 그윽한 애정의 대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흘리지 않고 흔하고 아름다운 것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나는 왜 쓴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주제에 대한 갈급한 마음은 없어도 말과 언어의 감각을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나는 쓰는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등등. 대답은 어렵지 않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내 삶 속에 있지만, 아직 그것의 일부에 머무를 뿐 전체를 아우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진한 애모의 대상이 바로 나의 삶 그 자체가 되는 날에 비로소 봇물 터지듯 목구멍에 걸린 언어의 홍수가 터져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쓰면 쓸수록, 내 삶에 내가 이렇게 없었나 싶다. 나의 삶을 나로 채워가고 싶다. 정말로 발설하고 싶은 감정은, 울분과 비슷한 그 감정은 잠시 감춰 두고 부드럽게 피어나는 봄에 앉아 있는 나의 마음을 말하자. 햇빛은 눈이 부시고 두 다리는 나른하고 가슴은 잔잔하다. 작년에 보지 못한 아담한 호수가 내 가슴에 들어와, 매연의 도시 같던 내면에 어울리지 않는 자연이 자리한다. 그 어린 자연은 엉성하지만 순수한 모양이다. 나는 그 호수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깨끗한 호수의 수면에 비추어 보이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힘껏 받아들인다. 내 이목구비의 조화를, 내 나이를, 내 꿋꿋한 취향과 성격을. 나의 외로운 현재를.


 외로움은 나의 감정인지 봄의 마음인지. 봄이 외로움을 하소연하고 싶어하는 바람에 내가 대신 마음이 간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간지러운 마음은 마땅한 해소의 출구를 찾지 못해 꼭 내가 아닌 것만 같은 행동—아파트 난간을 넘어 꽃핀 벚꽃을 꺾어 주머니에 넣는 행동으로 표현된 듯하다. 한 송이의 여린 꽃송이는 애무의 손길에도 제 모양을 잃지 않았으나, 반 나절이 지나 겨우 주머니의 어둠에서 벗어났을 때는 너무나 몰골이었다. 꽃잎은 다 떼어지고, 짓밟힌 것처럼 못생겨져서 한순간 나의 무상한 욕심을 반성하게 만든, 한 송이의 벚꽃. 찰나의 외로움이 소유욕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외로움이 불러오는 소유욕은 대상을 망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마음이 허기져도 함부로 꽃을 꺾지 않으리라고, 난간을 넘어 피어난 벚꽃들은 늘 눈으로만 감상하리라고 다짐하기에 앞서, 우선 나에게 봄이란 유혹자를 조금 가엾이 여기자고 말한다. 홀린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봄도 사랑이 고픈 것이라고. 한 송이의 가냘픈 봄꽃과 지독한 일탈을 즐기고자 나라는 대리행위자를 홀렸으나, 주머니가 무서운 곳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나의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어린 꽃송이는 망가지고 망가져선 본래의 아름다움이 뭉개어진 파격적인 몰골로 남았다.


 나는 지금 학교 도서관. 4월 둘째 날이나 됐건만 왜 저녁은 아직도 추울까. 이것은 겨울의 추위가 아닌, 봄의 추위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움츠러들까.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명저를 열독하고, 자기 격려의 무상한 노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낳은 하루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왜 쓸까? 에 대한 대답은 항상 마음속에 있다고 자신에게 말해준 것이 사실 오늘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나는 생각하고 있다. 쓰는 감각이란 어쩌면 현실적인 사랑의 감각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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