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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Mar 23. 2024

계절을 다루는 연습


 나 진짜 뭐하고 있는 거지. 큰 보폭으로 걸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소란이라고는 없는 포근한 봄날 내 마음만이 소란이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혼란스러울 땐 글을 쓰면 안 된다고. 물론, 그때 쓰면 안 되는 글이란 타인에게 보여줄 글을 뜻한다.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고 나 혼자 잊는 글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얼마든지 써도 괜찮다. 생각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글도 당사자에겐 소중한 기록이 되니까. 하지만 타인이 읽는 글을 그런 식으로 써버리면 아무래도 조금 미안한 것이다. 애써 귀중한 시간을 들여 괜찮은 몰입도를 유지하며 글을 읽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글쓴이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면 허탈하지 않겠는가.


 혼란스럽다. 그래서 나 진짜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던 것이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내 손이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을 만한 무엇은 쉬이 찾을 수가 없고, 또 날은 너무 밝기만 하다.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다녔던 카페를 방문했는데 봄에 어울리는 가벼운 표정인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행복을 먹는 벌레들처럼. 나는 그들을 결코 나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 섞여서 멍하니 귀로 흘러들어오는 음악을 듣고 있자니 외로움이 생겼다가 곧 옅어졌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를 건설적으로 꾸려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음의 목소리들. 뜻 모를 불안과 혼란. 나는 글을 쓰는 것을 너무나 사랑하고, 나의 이 열정적인 마음을 알아봐 주지 않는 친절한 장님들이 싫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아 어째서일까 최근 들어선 어떤 설렘도 찾아오지 않는다. 설렘이 없다. 정말 큰 문제이다. 동시에 삶에는 방해가 되지 않기에 무척 사소하기도 하다. 심장의 선정적인 펌프질. 그것으로 인해 심장에서 온몸으로 뻗어나가는 피는 고요했지만 짙었는데. 짙고 뜨거웠는데. 내 피로 쓸 수 있는 글자는 지금 권태와 피로 이 두 개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 스스로 느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타인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완전히 별개라고 보지 않게 됐고, 그들의 생각이 나의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원래 어두운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어려운 건 없었다. 말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다. 좋다, 라는 단순하고 다소 둔하기도 한 형용사를 남발하는 건 정말 취향이 아니지만, 더 깊은 표현을 생각할 의지의 부족이라고 할까. 나는 완벽주의 같은 것도 없나보다.


 삶은 끝없는 환희와 끝없는 권태의 어울림 속에서 이어지나 보다. 사는 건 지루하지만 행복한 일인 것이다. 예전에 나의 가슴이 더 뜨거웠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땐 나의 권태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피가 끈적끈적해지는 이야기가 좋았고 또 그런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룻밤 새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냉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나만이 알 수 있는. 나의 생활도 이제 피곤해졌기 때문에 고독을 사랑으로 바꾸는 힘을 잃었다. 미달에 머무는 부족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내 것인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을, 환상이라는 달큼하면서 쌉싸름한 물약으로 치유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취하게 했던 것이었다. 마침내 취기가 날아가 사라진 요즘 나는 지독하게 평범한 봄을 보고 휘청거릴 뿐이었다.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다. 나만 감동하는 방법을 잊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상상에서도 현실에서도 내가 그윽하니 들여다보면서 눈물을 흘릴 무언가는 없으며, 바로 그 이유에서 눈물구멍이 따끔해진다. 아파트를 나오면서 앞 동 아파트 입구에 백목련 나무가 염치도 없이 아름다움을 피운 것을 보았다. 멀리서 보면 큰 열매의 향기로운 속살처럼 보이는 백목련은 화사한 느낌을 풍기기보다는, 의젓했다. 나는 그런 의젓함에 위로받곤 하는 사람이다. 오래 지지 않고 피어 있었으면 좋겠다. 앞 동 입구의 조용한 백목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마음이 소란 잃은 적막 속에서 조용하리라. 희망이 깃들 수도 있으나 불행이 깃들 수도 있는 그 마음은 겸허하다고 말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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