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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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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Mar 14. 2024

거울


네가 거울 앞에 서면 내가 마중을 나오고

내가 거울 앞에 서면 네가 그리하는데

어째서 두 사람은 같지가 않을까


세상의 냉소에도 상처받지 않은 어느 겨울날

네가 피워 흘리던 그 씁쓸한 연기가 달콤해 보였다


상상의 황량한 정원에서 나와 눈빛을 겨루던 열정적 존재의

작은 습관을 배운 나로 인해서

너는 입맞춤 후에 피를 흘렸다


살짝만 물어뜯는다는 게 마음이 급해서 그만

미안함에 부서진 손톱을 손바닥에 박아넣던 나도 이제는 

조금씩 피맛을 보았다

피맛으로만 알 수 있다는 사랑의 환희 따위에

너와 나는 무관심을 가장했다


뜻 없는 위협을 즐기는 별난 취미를 배웠고

우울한 비 냄새가 무릎을 시큰거리게 할 때 특효약인

별사탕을 험악하게 음미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은 서로의 팔꿈치를 어루만지는 순간의 감각과도 비슷했기에.


나의 팔꿈치는 부드러운 손길에 종종 까졌고

너의 팔꿈치도 견고하던 각질이 죄 벗겨졌다

그것은 때로 두 사람의 몽롱한 눈에도 불안한 것이었으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뿐. 길들여진 팔꿈치보다 더 불안한 건

연인의 매번 같은 귀갓길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지겨운 귀갓길엔 마음을 간질이는 바람조차 없었다.

아무리 생의 짐이 무거워도 너의 밥그릇이 식기 전에 내가 왔고

나의 밥그릇이 식기 전에 사랑하는 네가 왔다.

너의 얼굴에서 나의 피로를 마주하며 미지근한 식사를 했다 

그 누긋한 시간들.


푸른 눈빛의 소유자인 너는 침착함에서 품위를 찾았지만

가끔 격정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삐걱대는 쪽문을 닫았다

쪽문뿐인 마음.

나의 울적한 노크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울적하다는 너,

들으라고 흥얼거린 물빛 노래는 너의 어머니가 부르던 것이었다.

   

절망과 회복의 봄.

너는 가끔 우리 엄마처럼 웃곤 했다.

그럼에도 거울은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겹칠 수 없었다.               







사진: Unsplash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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