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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Mar 08. 2024

낮잠과 창살 너머의 하늘


 오후 여섯 시의 하늘은 신성한 하늘이었다. 고독한 사람의 마음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품. 그러나, 감상적인 하늘은 아니었다. 눈물이 흐를 이유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의 변덕스러운 고독에 대해 이미 면역이 생겨 더 이상 쉽게 감상에 빠지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뼛속까지 인간 혐오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 하고 바로잡더니 나더러, “그쪽만큼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군요.” 따위의 망언을 속삭였다. 우스웠다. 도대체, 내 안의 그 자는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천연스럽게 단정하는 것일까. 나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안다.


 꼭두새벽(내겐 아침 일곱 시가 꼭두새벽이다)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밥 대신 빵을 입에 물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준비를 끝낸 다음 무심하게 현관문을 열어젖히면, 하루가 아름다웠다. 잠은 부족했지만 은은한 긴장으로 인해 눈이 감기지 않았다. 오 일이 그렇게 흘렀다. 낮잠이란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낮잠을 유혹하는 내면의 적을 단단히 타일러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점심을 먹은 후 졸음이 솔솔 밀려오면 거절할 힘이 없었다. 도저히. 하루의 햇빛이 가장 아름다울 때 나는 침대에서 짧은 낮잠을 잤다.


 유독 피로했던 목요일, 아 일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은데 결국 무슨 요일이었는지까지 소상히 써버린다, 여하튼 목요일에 나는 무려 한 시간 반을 침대 위에서 기절한 듯이 잠을 잤는데, 어설피 정신이 들어서 눈을 살그머니 떴을 때 현실은 꿈과 뒤섞였다. 집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방 밖에서 그릇을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너머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비현실적으로 포근하게 느껴졌고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바로 몸을 일으켜서 방 밖으로 나갔다면, 내가 잠이 든 사이에 그릇을 씻어준 요정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냥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돼서, 어쩌면 입가에 작은 미소까지 머금은 채였는지도 모른다. 한낮의 기묘한 경험이었다. 한낮의 요정이 달그락거리며 그릇을 씻어준 건 아무래도 꿈속에서의 일이었나 보다. 다시 내가 말끔해진 얼굴로 방 밖으로 나왔을 때, 개수대에는 그릇들이 그대로 있었으니까. 나에게 어서 청결하게 만들어달라고 사물 주제에 무언의 압박을 속삭여오면서 말이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기억해두었다가, 내 마음이 내킬 때 응해주었다.


 원래 벽을 보고 있던 책상을 창문을 향하게끔 놓고 그 앞에 앉아서 글을 썼다. 창살 너머 내다보이는 오후 여섯 시 경의 하늘은 신성한 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멋대로 나의 무의식 속에 찾아와 상냥하게 그릇을 씻어준 그 요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존재를, 전체적인 분위기를 상상했다. 어딘가, 나와 닮아 있었다. 세피아색 구두를 집 안에서도 고집하는 독특한 성격만 제외하면. 그 구두가 내 눈에도 예뻐 보이니 취향마저 엇비슷한 것 같았다. 내가 남성이었다면 그리고 잠에 취한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슬픈 운명의 요정이었다면, 세피아색 구두를 신은 그와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사람을 좋아한다고 놀린 내면의 존재와 그 설거지 요정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그쪽만큼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군요. 하는 말투. 그 요정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은 내 착각일까. 그렇단 소리는, 내게도 그 말투가 어울린다는 뜻인데, 하고 생각하자 결국 머리가 아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연한 미소 같은 햇빛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한 어둠이다. 또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조금도 우울하지 않은 기분으로 말하는 건 별난 일이려나, 생각했다. 내가 나의 마음을 몰라, 우울한데도 우울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스치듯 들었다.


 나는 행복하지만, ‘이것을 위해 나는 죽을 수도 있다’고 느끼게 하는 뭔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스물다섯 번째 봄까지는 그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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