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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Feb 29. 2024

붐비는 카페에서


 하늘은, 우주로 나가는 통로로서의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검은 우주와 검은 땅 사이에 하얗고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나는 성급히 결론 짓고 말았다. 내 사랑은 저기에 있구나. 라고.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의 이동을 구경했다. 자동차도 보았고 버스도 보았다. 도로 건너편 작은 카페가 따뜻한 불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카페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


 건너편의 카페는 밝은 불빛을 내뿜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손님을 기다리는 제 처지의 외로움을 떨쳐내고 있었다. 내 눈은 그렇게 보았다. 내가 손을 움직여 쓰는 동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건너편 카페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신선하게 울렸을 것이다. 내 가슴은, 그와 같은 신선한 종소리가 울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그윽한 매력을 가진 풍경이나 시 한 구절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푸른 꽃처럼 아름다운 슬픈 미인. 농담이고 그냥 사람을 기다린다.


 나는 결코, 스스로 문을 열어젖히고 나의 외로움을 호소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내 아늑한 곳으로 스며들길 더없이 잠잠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내가 나서봤자 사소한 재앙만 생길 뿐이니까, 기다림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그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느냐,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나는 내가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공부엔 크게 소질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교 6등까지 해봤는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잘하지 못했다. 스스로 노력을 너무 안 한 탓도 있었다. 수학이 특히 어려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영어 시험이 제일 쉬웠던 것 같다. 학교 영어 시험은 95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학원에서 내신 대비를 해줄 때 나는 학원 교육을 따라가기보다는, 내 판단만을 믿고 암기에 전념했다. 시험에 나오는 모든 지문을 통으로 외워버렸다. 나는 늘 준비된 마음으로 영어 시험을 쳤고 항상 결과가 좋았다. 암기가 통하지 않는 수능에서는 89점을 받았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해묵은 얘기를 꺼내는 것일까. 수능은 내 인생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시험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대학에 가서는, 긴장에 찬 첫 학기를 제외하고는, 성적 관리는 엉터리로 하면서 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주구장창 써댔다. 공백기도 있었다. 내가 거짓 꿈을 꾸고 있다고 단언하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계속 썼다. 좋은 글도 있었고 나쁜 글도 있었다. 즐겁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고 괴롭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는 습작 기간이지만, 한 가지 어렴풋하게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태도였다. 그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던 온전한 나로서의 기간이었고, 신경 쓰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전적으로 가슴에 의지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무섭도록 타올랐다. 사람들은 내 몸을 건드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너무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야욕에 끓는 수벌처럼 사나웠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수벌을 가슴 속에서 죽여버렸고, 갈매기나 물고기 같은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갈매기는, 일본의 꽃인 오사무. 물고기는, 조선의 꽃인 이상. 대단하지 않은 내가 너무 대단한 존재들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까. 한때 천재적인 존재들의 불행을 흉내 내려고, 그 불행만은 닮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연기했던 적도 있었다. 결과는 엉터리였다. 타인의 모방밖에 되지 않았다. 그 모방마저도 눈 뜨고 볼 수 없는 추태였다. 나는 나대로 불행하고, 나대로 행복해야 했다. 그걸 늦게도 알았다. 나는 불행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았다. 아직 나의 불행은 멀리 있는데 스스로 불행을 추구하는 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헛된 감정 낭비를 하는 대신 단단한 지성을 가지고 자기 탐구에 임하고 싶었다. 아아. 고뇌가 없는 표현은 귀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제대로 된 노력을 시작하지 않았다. 작법을 공부하지 않았다. 수사법을 익히지도 못했다. 그냥 마음에 잡히는 책을 꺼내 몇 시간이고 읽기, 하고 싶은 말인지 알아보기 위해 무작정 끄집어내 써보기, 후회하기, 부정하기, 사랑하기, 내일보다 당장 지금의 만족을 더 중요시하기, 그리고 또 후회하기, 한없이 사무치기, 깔깔거리기, 울분에 차서 침묵하기 등등. 내가 했던 건 지적인 사람들이 하는 그 공부가 아니었다. 지적인 사람으로 살았던 적이 없는 야생아와 같은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하는 기분으로, 공부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독한 학교생활. 혼자서 한가하게 꽃비 내리는 교정을 산책해야지.


 푸른 하늘은 어두워졌다. 황홀한 별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닫혀버렸다. 나는 검은 땅에 매여버렸다. 나는 어디로도 떠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가야 한다. 고뇌의 실로 엉터리 사랑을 짜야 한다. 사랑 없이는 하룻밤도 살 수 없으니까. 나는 남들에게 커 보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에게 높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빛 나는 성적표를 받지 못해도, 진실된 매달림의 시기를 보낸다면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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