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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Aug 27. 2024

회한의 장에도 아침이 켜진다

이상에 대하여

 

 늦여름 밤은 우정을 나누기 좋은 시간이다. 나는 전날 모종의 이유로 세 시간밖에 잠을 못 잤기 때문에, 해가 저무니 마음에 나누고 싶은 생각은 많은데 그걸 입으로 부드럽게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어젯밤 안국의 어느 이 층짜리 카페에서 한 달만에 만난 회포를 풀고, 문학 이야기로 밤을 채웠다. 당연히 이상 이야기도 스쳐 지나가듯 흘러나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이라는 시인의 존재론적인 서정성을, 가장 깊이 있는 시선으로 들여다본 사람 가운데 하나인 M씨의 <심심산천에 묻어주오>를 읽었을 때의 나의 기분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 친구들과 나의 사이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는 달달해서 맛있었고, 허리는 아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양쪽 귀에서 은은한 진줏빛 나비 귀걸이가 찰랑거리는, 지적인 이목구비의 친구는 내게 직접 손글씨로 쓴 편지를 건네주었다. 생일날이 아닌, 내게 아무것도 아닌 날에 나를 위한 편지를 받는 일은, 오랜만이 아니라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브론테라고 부르고 싶다. 그녀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 같은 영혼을 흠모하는 듯했고, 자주 휘청이고 때론 멸망까지 이르는 인간 영혼의 불안성을 또 흠모하는 듯했다. 그녀의 탐미는 영리한 탐미, 냉정한 탐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끓는 영혼을 가진 캐서린에게 이따금 편지를 써주는 캐서린의 지적인 친구 역할. 삶과 사랑의 모호성을 대변하듯, 말없이 흐르는 앞뜰의 안개를 두 눈의 응시로써 꿋꿋하게 꿰뚫는 캐서린의 태생적인 담대함을 흠모하여 편지를 날려보내는 친구 역할이지만, 그녀에게도 그만한 담대함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조금 길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캐서린은 내가 잘 모르는 여자이고, 그날 기억에 남았던 비유는, 그녀는 말하자면 이상 쪽이고, 나는 말하자면 M씨 쪽이라는 것.


 때론 흐느끼듯 수축하고, 때론 폭렬하듯 팽창하는 우주를 고작 인간의 몸으로 감당하고 사느라 사위어가던 예술가가 그녀라면, 나는 그녀의 탐미적인 사윔을 곁에서 서러워하는 친구를 하련다. 아무튼 나는 어제의 만남으로 나비 귀걸이의 브론테를 전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우정이란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것임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부족한 지식과 말솜씨 때문에 나의 생각은 자주 이 끝에서 부스러지지만, 늦여름 밤은 서툰 우정이라도 나누고 싶은 시간이다. 나는 행복했다. 친구들은 이상에 대한 나의 게으른 집념을 마니아적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너무나 게으르기 때문에 마니아라는 정력적 호칭을 달기 창피하다. 물론 기분 좋은 밤에 마시는 500cc 생맥주보다는 이상의 소설이 좋다. 피로한 밤의 한두 시간을 그냥 가져가버리는 적당한 오락성의 영화보다는, 숫자판 같은 이상의 시가 나에게 더 보람이다. 마니아가 아니어도 그 정도의 단호한 충성은 표현할 수 있다. 나에게 이상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게도 늘어놓은 것 같다.


 영원할 수 없는 감정과 탐구에의 막연한 욕구가, 제 안의 한계성을 선선히 무시하며, 문학을 향한 나의 기질적인 애착을 등에 업고 느슨한 포물선으로 날아가 박힌 그 낡은 과녁.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과녁. 그 과녁은 시인의 빛 바랜 세계이고, 명확성보다는 모호성이 더 많은 시인의 작품들이다. 돌이킬 수 없이 부스러져 가고 있는 부분과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여태껏 건재한 부분이 뒤섞인 그 낡은 과녁은 어쩌면 시인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친한 존재들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시인의 부스러져 가는 부분을 안타까워하고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꿋꿋하게 남아있는 부분을 조심조심 문질러 닦아주는 마음과 다름없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좀 더 이해해주고, 그들에게 좀 더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까지 생각하고 리뷰를 하고 있는 건 아니고, 요즘 내가 억지로 쓰지 않고 자발적으로 쓸 수 있는 글은 이런 글뿐이라, 어쩔 수가 없다. 내 글이 나를 이끈다.


  이 게으른 독자는 또 한 번 이상의 생애를 정리해야 하는 막막함에 잠시 먼 곳을 바라본다. 선생님, 어차피 보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형식적인 인물 소개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고 마음 속에 물어본다.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이 글이 길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1910년 출생. 1937년 사망. 요절. 이런 식으로 명징한 명사형으로 나열하는 방법으로 갈까, 잠깐 고민하지만 지금 내 손에 연표가 없어서 혹시나 전달되는 내용에 오류가 있을까 저어된다. 이상은 1910년에 태어나 1937년 운명하였다. 어릴 때 양자 생활을 했다. 외로웠을 것이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기수로 일하다 지병의 화살을 맞고 일을 관두었다. 좌절된 화가로서의 꿈에 대한 슬픈 감정도 기수직을 그만두게 한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소극적으로나마 추측한다. 붓을 꺾고 펜을 들었다. 간간이 잡지 표지나 소설 삽화를 그렸다. 팽창하는 시적 상상력과 새로운 지적 혁신에 대한 투신 욕구를 꾹꾹 눌러담은 습작이 이천여 점에 이르렀을 때, 그 중에서 30편을 골라 <오감도>라는 제목의 연작시로 야심차게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M씨의 표현대로 벼락을 맞았고, 무지한 악의의 총알처럼 빗발치는 독자들의 항의와 투서에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연재 중단을 당했다. 금홍이와의 동거가 끝장났다. 고주망태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술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여러밤 달을 보면서 과음했다. 사실 달을 눈에 담았는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금홍이를 사랑하는 동시에? 아니면 금홍이 후에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 여자를 친구에게 양보했다. 시를 계속 썼다. 그는 표표하고 멋이 있는 경성의 모더니스트였다. 소설도 썼다. 수필을 썼다. 습작은 쌓여갔다. 붉은 피가 연연한 휴지도 쌓여갔다.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으면 말하겠지만, 이상은 미워할 수 없는 괴짜라는 느낌의 회고록을 남긴, 나의 웃음 유발자 김소운 씨가 이상에게 '개자식'의 일면을 느꼈다고 회고한 사사로운 사건의 중심 인물이자 피해자로 등장하는 변 씨, 그의 여동생인 변동림과 결혼하여 가난한 신혼 살림을 차렸다. 낮을 잃고 밤을 얻었다. 몇 달 간의 피폐와 사랑이 버무려진 신혼생활 끝에 이상은 동경으로 떠났다. 여러가지 삶의 악조건들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고, 이대로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시인은 홀로 배를 타고 검은 바다를 건넜다. 어제보다 오늘이 야위고, 오늘보다 내일이 야위는 육체는 되살리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인 쇄신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한 간절함과 흩어질까봐 함부로 발설하지 않은 마음속의 자신감과 야심은 동경의 실망스러운 얼굴을 마주한 뒤 허허로운 자조를 띠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지저분한 하숙방에 칩거하면서 계속 작품을 써 내려갔다. 1937년 연초에, 그는 세상의 불합리한 악의를 대변하는 듯 어디선가 우악스러운 인상으로 나타난 일경에게 사상 혐의로 체포되어 니시간다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한 달간의 모진 취조. 건강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다.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자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일본에 있던 이상의 동무들이 이상의 빛 안 드는 하숙방을 찾아갔다. 그는 꼿꼿하게 앉아서 그들을 맞이했다.


 1937년 4월 17일 오전 4시. 이상은 건강 악화로 입원한 동경제대 부속병원의 작은 병실에서 눈을 감았다.





 일생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적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교활한 게으름을 반성하면서 천천히 느리게 숨을 쉰다. 호흡의 감각을, 느껴본다. 이토록 심심한 호흡.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는, 더는 누릴 수가 없는 심심함. 나는 어느덧 밤이 내려앉은 창밖의 거리를 바라본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이상함으로 다가온다. 나는 다시 눈을 내려뜨린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눈동자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슬프지 않다.





회한의 장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하여 나는 얼금뱅이였다

세상의 한 명의 여성도 나를 돌아보는 일은 없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피했다

이제 나에게 일을 시키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역사란 무거운 짐이다

세상을 향한 나의 사표의 서법은 더욱이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를 닫아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나는 읽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해할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있다


나는 누구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아마도 세상의 한 명의 여성도 그를 돌아보는 일이 없다는 그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표표하고 멋이 있는 경성의 모더니스트였으니까. 하지만 불행에 잠긴 마음은 자조와 고립의 언어를 채찍질처럼 자신에게 휘두른다. 나는 그런 채찍질을 자신에게 가하는 사람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시의 텍스트 자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힘이 있다.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라 타인의 행복한 모습보다는, 나 대신 약해지고 있는 힘껏 불행해보는 타인의 모습에 눈길이 가는 법이니까. 나도 다르지 않은 인간이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이기에 이 못돼먹은 마음으로 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연민은 슬픔이 아니다. 슬픔보다 정제된 무엇이다. 눈물을 흘리는 감정이 아니라 조심조심 닦아주는 감정이다. 비관의 시 뒤에는 희망의 시가 온다. 밤이 가면 아침이 오듯이. 아래 실은 <아침>이라는 시는 <역단>이란 큰 제목의 연작시 가운데 한 편이고, '역단'이란 조어는 권영민 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운명을 거역함'이라는 의미이다.





아침


캄캄한공기를마시면폐에해롭다.폐벽에그을음이앉는다.밤새도록나는몸살을앓는다.밤은참많기도하더라.실어내가기도하고실어들여오기도하고하다가잊어버리고새벽이된다.폐에도아침이켜진다.밤사이에무엇이없어졌나살펴본다.습관이도로와있다.다만내치사한책이여러장찢겼다.초췌한결론위에아침햇살이자세히적힌다.영원히그코없는밤은오지않을듯이.





 아침의 도래가 담긴 시를 찾게 되는 건 언제나 밤이다. 이상이 맞이한 아침은 오늘날 누군가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아침일지도 모른다. 이상은 지치고 병들었지만, 그런 그에게서 누구도 아침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 아침이 되면 간밤의 고통이 조금은 잦아들고, 배가 고파온다. 아직 나는 여기에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려주듯이, 위장은 힘차게 명동한다. 그러한 명동은 가느스름한 기척에 불과해도 상관없다. 아무리 가느스름한 배고픔이라도 오래 충족이 되지 않으면, 주인으로 하여금 점점 배고픔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먹으라고, 먹고 좀 더 살아있으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주체는 위장이라는 덤덤한 파렴치한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주체는 다시 한 번 기운을 내서 몸을 일으키고, 무엇이라도 먹는다. 먹으면 일어날 힘이 나고, 일어날 힘을 얻은 인간은 생존의 욕구 너머의 생명의 욕구가 일으키는 미약한 슬픔을 좇아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킨다. 꿋꿋하게 하루치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오늘의 존재들에게 나는 사랑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가장 황홀한 시인 가운데 하나인 이상에게 행복이 있기를 빈다.


 그 불행의 봄, 가련한 쓰러짐의 소리는 그를 잃어야만 하는 시(詩)의 신이 진노하여 벚나무 한 그루를 밀어 넘어뜨리는 소리였을 뿐, 운명에 거역하며 달려온 시인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 지성과 열정의 투사는 제 의지로 눈을 감았고, 눈을 감는 순간에도 죽음이 아닌 아주 긴 춘면에 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심심한 세월이 흐르고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의 어둠은 걷히고 아침이 와 있을 것이란 믿음과 함께. 무미한 잠이 계속된다. 부러진 생의 초침은 조용히 작동된다. 느 아침, 햇살은 꾸지람처럼 그의 눈꺼풀을 간지럽히고, 그는 길었던 춘면에서 깨어날 것이다. 너무 오래 잠을 잤다는 생각을 하며 처음 보는 그곳을 둘러보는 시인. 그곳은 회한이 없는 곳일까. 아니면 여기처럼 심신의 작은 아픔들과 회한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장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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