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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Nov 07. 2024

썩은 이가 아픈 너와


너는 요새 잠을 잘 때마다

흰 사슴을 죽이는 꿈을 꾼다고 했다.


흰 사슴의 우물같이 고요한 눈망울이

너를 지순하게 올려다볼 때 마음은 괴롭다고 했다

그러나 난도질을 시작하면 괴로움은 참혹의 희열로 바뀐다고.


너는 그랬다. 희열이란 참혹한 것이라고.

너는 우리가 서로의 눈동자를 쉬이 마주보지 못하던 시절 들른

을지로의 어느 골목식당 자동문 옆에 방치된 어항 속에서 놀던

작은 붕어의 하느적거리는 움직임을 잊지 못했다

꿈속에서 너는 그 어항 속 붕어가 되어

부옇고 비릿한 물 속을 헤엄치기도 했다


그러나 네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흥분하는 꿈은

이 도시를 전부 불태우는 꿈이었다

도시 곳곳에 숨은 애잔하고 나쁜 열정들이 발화물질이었다

불은 붙이자마자 삽시간에 번져가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다

너는 고독한 발자국을 찍으며 언덕에 올라

불타오르는 도시의 생지옥을 사무치게 눈에 담았다


그러다 은은해지는 것

너는 슬픔이라 불렀다


슬픔은 매화꽃 가지를 닮았는지 너는 그걸 자주 그렸다.

가끔 매화꽃 가지에 매화는 없고 몰염치한 사랑의 봉오리가 맺혀

그러면 너는 눈물이 맺혀

가끔 나의 가슴팍을 한없이 쥐어뜯으며 말 걸어도 대답도 없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웃음을 흘리면서 흐느끼었다


나도 너처럼 해보고 싶었다고 늘

말하고 싶어도 늘 열감기는 내가 아닌 너를 사랑하고

충치가 썩기 시작한 입안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걸

너를 통해 배울 무렵 나는 울지 못해 웃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래도 나는 좋았다 겨울처럼 추운 네가.

열이 가라앉으면 충치가 썩고 충치가 가라앉으면 열이 나는,

너의 애잔하고 나쁜 일생이. 꼭 내 것 같아서

너의 꿈의 계절은 늘 겨울

이제 그만 손에 피를 묻히고 흰 사슴은 외로우나 온화한 빛자리에서 우아하게 동사하였으면.


너의 포악을 피해 달아나지 못하는 건 오직 나 하나였으면.

썩은 이가 아픈 너와

입술을 가만히 맞대고 있기 좋은 밤

그러다 내 멀쩡한 이 하나가 썩어도 운명이라며 받아들일 것 같은 밤

11월은 무서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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