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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stlecake Feb 09. 2020

삽 쿠치 밀레가

인도 12일 차, 개에 물리다.

삽 쿠치 밀레가,
Everything is possible in India.
인도에선 모든 게 가능하다.







데이트 한 번 해본 적 없는 남자한테 청혼받을 뻔하고, 

개에 물려 피 흘리며 처음 본 호스텔 매니저 스쿠터에 실려서 인도 병원 투어하고,

공립부터 사립까지 각종 병원 가서 광견병 백신(무려 5차까지 맞아야 한다) 맞고, 

개에 물려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처음 간 호스텔에서 파격적인 할인과 호텔급 대접을 받고,

결혼식 거리 행진의 대환장파티 음악 들으면서 수술실에서 수면 마취하고 봉합수술 받고,

여행 중 만난 인도 로컬 엄마네 집에서 인도 엄마 집밥 먹으며 실밥 풀때까지 요양하고.


이 모든 게 인도에선,

아니 인도라서 가능하다.






사진만 봐선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숙소 - 길 하나에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 개, 소가 전방향으로 주행하는, 골목길 코 앞 모퉁이 너머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짐 실은 당나귀를 모는 아낙이 평화로이 걸어 내려오는 작은 골목길과 불과 몇 분 안 되는 거리에 사람 무는 사나운 개가 나돌아 다니는.

그리고 짜이 한 잔 하면서 말 몇 마디 나눈 가게 총각으로부터 프러포즈 반지 받을 뻔 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예측불가 인도.


그냥 모든게 과정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극과 극. 모든 게 투머치, 익스트림.

세상 둘도 없는 프렌들리 함과 아무 일 없다는 듯한 무관심이 공존하는 곳. 계획대로 되지 않고, 계획 자체가 소용이 없는. 아주 간단한 일 하나에도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인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어찌어찌 해결되고 마는. 이 제각각의 마살라가 한 데 버무려진 곳.

 







인도로 떠난 이후 몇몇 친구들이 하나같이 물었다.



인도 어때?



고작 인도 여행 12일째 개한테 다리를 심하게 물려 주저앉아 버린 나는,



 몰라, 진짜 모르겠어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이 와중에도 운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아,

인도 여행 중 만난 로컬 친구의 초대로, 그 집에서 당분간 지내게 됐다.



거의 모든 게 공짜였지만 활짝 열린 내 상처를 맡기기엔 다소 불안과 충격적이었던 공립 병원과, 2x6 cm 찢어진 틈으로 훤히 보이는 속살을 어설픈 거즈 붕대로 감싸고 슬리핑 버스를 타고 친구가 사는 도시로 이동, 꽤 괜찮은 사설 병원으로 옮겼으나 역시 위생과 시설 측면에서 문득문득 의구심을 갖게 했던, 하지만 별도리 없이 한 달 치 쯤의 숙식비를 병원비로 때려 붓고 난생처음 겪어본 반수면 마취 상태의 헤롱 거림, 병원 밖에서 울려 퍼지던 요란한 발리우드 음악 사이에서 대답 없는 질문들을 영어로 횡설수설 던지는 사이, 봉합 수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물론 사고 없이 다치지 않고 내 나름의 여행을 쭉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는가.




인도 여행 전 아쉬람에서 요가 수행을 하고 온 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가.

거동의 불편함보다도 젤 불편한 건 마음이어서, 여행이고 뭐고 어정쩡하게 로컬 하우스에 눌어붙은 동안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들이쉬는 숨에 받아들이고 (acceptanece)
내쉬는 숨에  놓아주고 (let go).





올해 액땜은 이것으로 퉁치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여기 인도에, 쿨한 인도 친구의 마음 넉넉한 엄마가 사는 Pune(푸네)라는 도시에 있다. 여행도 아닌, 일상도 아닌 어느 틈에 어색하게 머물며 나의 어정쩡함과 그들의 고마운 호의를 최대한 즐겨보려 한다.






When it comes, it comes.

When it goes, it g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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