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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Jun 22. 2020

두려움을 아는 영웅의 뒷모습이란

<아이언맨>이 떠오르는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히어로물을 좋아하세요..


빰- 빰빠바 밤- 빰 빰 빰.. 이 음악이 귀에서 자동재생 되셨다면 당신도 히어로물 러버..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상상도 못 할 힘을 갖게 된다면?



한 번쯤은 다들 해본 상상일 겁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어릴 적 참 많이 했었는데요. 실현 불가능한 상상임에도 불구하고 김칫국 마시기로는 동네 1등이어서 '어떤 능력을 고르지? 투명인간?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이걸로 무얼 가장 먼저 해볼까?' 등등의 고민거리를 잔뜩 안고 밤늦게까지 이불속에서 뒤척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런 상상에 빠지곤 해요.(우습게도 여전히 어떤 초능력을 고를지 정하지 못했지만요..)


그리고 그런 이유로 히어로물을 참 좋아합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름들을 대어 보라고 해도 10명이 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지요.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원더우먼, 엑스맨, 아쿠아맨, 헐크, 앤트맨,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모두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가진, 제가 애정하고 아끼는 히어로들입니다.


(좌) 원래부터 전지전능한 천둥의 신, 토르  /  (우) 신체 강화 실험을 통해 국가적 영웅이 된 캡틴 아메리카

히어로, 즉 영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신 또는 신의 아들이거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어서 특별한 힘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경우, 또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가 어떤 계기-특정 물질에 우연히 노출된다던가, 불의의 사고로 수술을 받는 도중 실험 대상이 된다던가-를 통해 어마어마한 능력치와 힘을 갖게 되는 경우. 특히 후자의 경우는 갑자기 얻게 된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감추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가까운 이가 위험에 처하거나 무시무시한 악의 무리가 지구를 위협에 빠트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각성'하여 싸우게 되고, 마침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되죠. 이것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물의 일반적인 서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형적인 서사에 들어맞지 않는, 히어로라 말하기엔 조금 어색한 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위해 싸우며 정의감과 의로움으로 똘똘 뭉친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하지만 자꾸만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제겐 그런 아픈 손가락 같은 히어로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언맨'입니다.





아이언맨, 두려움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든다


아이언맨(Iron Man)은 사실 앞서 언급했듯 히어로의 전형적인 프로토 타입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아이언맨이라는 수트 속의 '토니 스타크'는 신적인 존재도, 우연한 기회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범인도 아니지요. 토니는 자신이 만든 하이테크 전투 로봇, '수트' 없이는 그저 나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인물이라고 말하기엔 또 무리가 있습니다.

영화는 그를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으로 세계 최강의 무기업체를 이끄는 CEO이자, 타고난 매력으로 셀러브리티 못지않은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억만장자라고 소개하는데요. 음.. 전쟁 무기를 만드는 히어로?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영웅?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를 두고 하는 말이죠

뛰어나도 너무 넘치게 뛰어난 이 괴짜 과학자이자 기업 CEO는 사업이면 사업, 여자면 여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시대의 난봉꾼으로 그려집니다. 나 잘난 맛에 살고 독단적이며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진 그는 얼핏 보기엔 '재수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시도 때도 없이 치즈버거를 찾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래키는 소년미를 겸비한,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언맨이 유독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두려움을 아는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만만한 태도 뒤에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았던 영웅 이전의 평범한 인간,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 그는 항상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이언맨1>에서는 심장에 박힌 파편으로 죽을까 봐 항상 가슴 한가운데 에너지 발전기를 박고 다닙니다. 이 장치의 독성물질로 인해 몸이 망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두려움으로 인해 한동안 떼어내지 못하죠. 그리고 2편, 3편으로 갈수록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트를 광적으로 집착하며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사람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스칼렛 위치의 초능력 공격을 받아 자기 내면의 공포와 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신의 실수로 인해 믿고 의지하는 히어로 동료들의 죽음을 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영화인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두고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천방지축에 유아독존, 세상 두려울 것 없이 배짱 가득해 보이는 그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두려움을 가득 안고 살아갔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어떤 뒷모습에선 두려움이 묻어난다


여기 그와 묘하게 닮은 작품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아는 듯한 뒷모습, 하지만 결코 그 두려움의 대상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 바로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입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희뿌연 안개 사이로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누구이며 왜 여기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걸까요. 등산을 하려는 건 분명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대자연에 맞서기라도 하려는 것일까요. 오른손으로는 지팡이를 야무지게 쥐고 왼발은 한 발짝 뻗어 땅을 단단히 디딘 채, 금방이라도 모든 걸 삼켜버릴 듯한 차가운 운무 가운데서 남자의 뒷모습은 결연하기만 합니다.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당당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안개 바다와 마주하는 그 뒷모습에는 많은 감정들이 묻어납니다. 눈 앞에 맞닥트린 거친 시련에 대한 두려움, 불안, 고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리는 생에 대한 의지와 투쟁, 집념..! 그리고 인생의 어떠한 풍파와 모진 시련에도 결코 굴하거나 무너지지 않겠다는 인간의 우아한 존엄성과 비장미까지. 자연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나약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더욱 위대해지는 인간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드러난달까요.


(좌)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 19세기경  /  (우) 겨울밤의 노년과 죽음 (모든 시간과 인생), 1803

이 작품은 독일 낭만주의의 대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프리드리히는 광활한 자연을 담은 풍경화를 로 그렸는데요. 자연의 숭고함과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의 투영은 그의 작품의 주요 특징입니다. 그의 풍경화들을 한번 가만히 바라보세요. 이상하게도 슬픔이나 고독, 적막감, 종교적 숭고함과 같은 것들이 느껴지지 않나요?


거대한 자연과 그와는 대조적이게도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한낱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처연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는 프리드리히가 유년 시절에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좌) 북극해(얼음의 바다), 1824  /  (우) 프리드리히의 자화상

어린 프리드리히는 일찍이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아이였습니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그 이후로도 두 명의 누이를 먼저 떠나보내지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동생 요한의 죽음은 그의 유년 시절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됩니다. 꽁꽁 언 호수에서 요한과 스케이트를 타던 프리드리히는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지게 되고, 그를 구하려다 요한이 목숨을 잃게 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자살 시도 후 목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늘 턱수염을 기르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지요.)


이와 같은 불운한 유년의 기억은 그의 작품 전반에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서늘한 냉소와 우울감을 드리웁니다. 풍경을 그리면서도 그 에 자기 내면에 잔재하던 평생의 외로움과 슬픔을 담아내게 되는 것이지요.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좌) 황혼 속의 산책, 자화상, 1830-1835  /  (우) 꿈 꾸는 자(몽상가의 폐허), 1835

자, 이쯤에서 위의 왼쪽 작품인 <황혼 속의 산책>이라는 작품을 한번 보세요. "자화상(possibly a self-portrait)"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그림은 화가가 가지고 있는 고독함의 정서적 세계관을 아주 잘 드러내주는 작품입니다. 전반적으로 다소 어둡고 음습한 느낌이지만 자기 경건과 성찰이 뛰어나게 표현되어있지요. 특히 화면의 중심부에 있는 초승달은 작품의 배경이 저녁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빛 바랜 황혼의 어두움을 머금기 보다는 낮의 태양과 같이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현실의 어두움과 두려움을 넘어서고자 하는 화가의 결연한 생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제목이 '자화상'인 걸까요?


이것이 절정을 이루는 대목이 바로 오늘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입니다. 삶의 풍파와도 같은 거친 풍광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 서 있는 신사의 뒷모습은 삶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뛰어넘고 극복해내려 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과도 같은 이 작품은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공포를 떠올리게 하며, 깊은 종교적 외경심과 낭만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속을 거니는 듯 묘하게 신비스러우면서도 신화 속 영웅의 모습마저 떠오르게 하는 그림 속 이 남자..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한 뒤의 내적 평안과 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왜 영웅,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걸까요? 비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유치 찬란하기까지 한 이들의 이야기는 왜 그리도 오래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걸까요? 영웅 서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 숨겨진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불의에 참지 않고 악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일조한다는 대리만족의 경험을 하게 되죠.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에게 더 어필이 되는 것은, 초인적인 힘을 가졌지만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어머어마한 능력과 힘을 가졌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또는 지키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며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묘하게 자신과 닮았다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좌) 그의 심장 발전기에 새져진 문구 "토니가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  그의 시그니처 명대사 "나는 아이언맨이다"

두려움. 그것은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으로 성장하게 하는 각성제인 동시에 그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적인 영웅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증거입니다. 그의 심장 발전기에 새겨진 문구도 "Proof that Tony Stark Has a Heart(토니 스타크에게 따뜻한 심장있다는 증거)"였지요.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가장 두렵고 떨리는 순간에 오히려 '내가 아이언맨입니다'하고 말해버립니다.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며,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그대로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는 약 10년간 약간은 재수 없는, 허세 가득한 로봇 수트를 입고선 그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책임감을 안고 사람들을 지켜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한번 더 말합니다. '나는 아이언맨'이라고. 그토록 두려움이 많았던 그였기에, 그 말은 유난히도 많은 영화팬들의 마음에 절절한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Good bye, Iron man..!

두려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따뜻한 심장(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즉 두려워할 수 있다는 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 있고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 하는 것이지요. 지키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도 생의 의지도 없을 겁니다. 그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될 대로 돼라-' 하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하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사랑해주며 지키고 싶은 어떤 존재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두려움이라는 그 묵직한 '책임감'을 외면하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겁지만 결코 내다 버릴 수는 없는, 그 자체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는 생의 핵심가치. 저는 이것 두려움이자 곧 책임감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이 가치를 품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며 차근차근 새 발자국을 내딛어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두려움을 아는 뒷모습은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론 오히려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따금씩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책임져야 할 많은 것이 생각나서 앞으로 걸음을 떼는 것조차 두려울 때, 저는 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아이언맨의 대사처럼 '그래, 이게 나야. 좀 두렵긴 하지만 뭐 어때. 이게 내 인생인데!'라고 말하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있음에 감사해봅니다.


자, 보란 듯이 두 팔을 앞뒤로 위풍당당 휘두르며 힘차게 걸어가 봅시다. 혹시 또 아나요. 그러한 뒷모습이 마치 안개 바다 위에 서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처럼 아름답고도 비장미가 넘칠지도요! 그렇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미세한 떨림으로, 오늘 하루도 당차게 나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술적인 하루 되시기를-!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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