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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Jul 27. 2019

[기고글] 그러기엔, 너무 찬란하다

<커밍아웃 스토리> (성소수자 부모모임, 2018)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귀한 지면을 내주셔서, 2018년 출판된 <커밍아웃 스토리>에 연구자로서 한 챕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글의 시작과 끝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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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새는 담장 안에 머물 수 없다. 그러기엔 그 깃털이 너무 찬란하다”

영화 〈쇼생크 탈출〉 중 레드(모건 프리먼 분)의 대사


박사과정 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제가 함께 일하던 교수님의 결혼식을 보도한 기사를 『뉴욕타임즈』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신문기사를 제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두 남성의 결혼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면서 느꼈던 묘한 낯설음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다행히도 당시 제가 공부하던 학교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도록 항상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그분의 프로젝트에서 일하며 그 낯설음을 점차 줄여갈 수 있었지요.


(중략)


언젠가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이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해 연구를 하며 예민하고 슬픈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눠야 하는 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모임에서 강연을 할 때만큼 절실한 눈빛으로 강의를 듣는 청중을 본 적은 없습니다.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인지라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내 자식 몸에 작은 생채기가 나면 그보다 몇 배 더 큰 상처가 가슴에 새겨지는 게 부모니까요.


한국의 성소수자부모모임에도 수많은 진 만포드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내 자식이 경험할 혐오와 차별에 분노하고 맞서 싸우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성소수자 혐오가 심각한 나라에서 그게 쉬운 일일 리 없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된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 분)은 여배우 포스터로 감방의 벽을 가리고 20년 동안 작은 동굴을 파서 탈출합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 하수관을 기어 나와 자유의 몸이 된 앤디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환호하던 그 모습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 장면은 감옥에서 만난 친구 레드가 했던 “희망은 위험한 거야. 그건 널 미치게 할 수도 있어”라는 말이 틀렸다고, 앤디가 온몸으로 세상에 외치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차별받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언제쯤이면 한국에서 성소수자가 ‘감옥’이라는 표현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쇼생크 감옥에서 앤디가 탈출하는 데 걸렸던 20년의 시간이면 될까요.


하지만, ‘탈출’은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한국사회 밖으로, 그 담장 너머로 탈출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싸움은 혐오의 담장 자체를 무너뜨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도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길입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들은 왜 이 부모님들이 그 막막하고 먹먹한 싸움에,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함께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두 다른 언어로 쓰여졌지만, 한결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갇혀 살기에는 너무 찬란한 깃털을 지닌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요.


그 변화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함께 상처받고,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https://bit.ly/2SJ6E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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