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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Aug 03. 2019

<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저, 황현산 역)

<어린왕자>를 분명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모든 내용이 새로울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그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왕자>도 이제서야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다.


어린이들은 이 책을 아무런 해설없이 편견없이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했던 저자의 말은 어린이에 대한 허상이 투영된 것 아닐까 의심해본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처럼 여겨진다.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고, 책 맨뒤에 실린 역자의 글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


- 그러나 꽃은 그 초록의 방에 숨어 계속 아름다움을 가꾸고 있었다. 정성 들여 색깔을 골랐다. 꽃은 천천히 옷을 입고 꽃잎을 하나하나 가다듬었다. 그 꽃은 개양귀비처럼 아무렇게나 차리고 나타나려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빛이 흘러넘칠 때에야 나타나고 싶어 했다. 그렇다! 정말 멋쟁이 꽃이었다!


- 그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거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꽃들은 정말 모순 덩어리야! 하지만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너는 정말로 나를 무척 숭배하니?」 그는 어린 왕자에게 물었다.    「〈숭배한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숭배한다〉는 건 내가 이 별에서 가장 잘생겼고 가장 옷을 잘 입고 가장 부자고 지식이 가장 많다고 인정해 준다는 뜻이지.」    「하지만 이 별에는 아저씨 혼자뿐인데요!」


-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나를 땅속에 숨게 하지.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칼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밀은, 금빛이어서, 너를 생각나게 할 거야. 그래서 나는 밀밭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고….」    


- 「시간이 없어.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 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그럼 넌 얻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얻은 게 있지. 저 밀 색깔이 있으니까.」 여우가 말했다.


- (황현산 선생님의 글)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그는 줄로 엮은 철새들에 매달려 별들 사이를 이동하여 지구에까지 왔지만, 이미 세상의 물정을 아는 그에게 이 불확실한 목가적 여행 수단이 더 이상 가능한 것일 수 없었다. 그는 뱀에게 물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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