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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Aug 08. 2019

마지막 수업에 나눈 세 가지 이야기

시간, 행복, 사람에 대하여

2017년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학부수업 <공중보건의 역사> 마지막 수업시간에 나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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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 저를 찾아와서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미안하지만, 제게는 답이 없어요.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니까, 제게 도움이 되었던 3가지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마치려고 해요.

첫째는 시간에 대한 거예요. 산다는 것은 무엇에 시간을 쏟을지 선택하는 일이예요. 예전에 지하철 벽보에서 봤던 시간 관리사 이야기가 있어요. 커다란 유리병을 두고서 그 안에 큰 돌을 먼저 넣고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이 병이 가득 찼나요?' 그리곤 자갈을 넣는 거예요. '이 병이 가득 찼나요?' 그리고 모래를 넣고, 또 마지막으로 물을 넣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요.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나요?' 누군가 답했어요. '아무리 가득찬 것 같아도 어딘가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 있다는 거요.'

시간관리사가 답했어요. '아니요. 제 이야기는 가장 큰 돌은 가장 먼저 넣지 않으면 영영 넣을 수 없다는 말이예요.' 어른이 되어 산다는 건, 결국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일의 연속이예요. 어린이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고 싶다고 투정부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야 해요. 우리는 계속 선택해야 하니까요. 가장 큰 돌을 가장 먼저 넣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돌을 영영 인생이라는 항아리에 넣을 수 없어요.

둘째는 행복에 대한 거예요.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가치를 쫓을 수 있지, 행복을 쫓을 수가 없어요. 행복을 삶의 목표로 쫓다보면, 자기 꼬리를 물려고 제자리에서 빙빙도는 강아지처럼 될 수 있어요.

신념, 우정, 사랑, 이런 가치를 쫓아서 살다보면, 간혹 행복이라는 게 나를 따라올 때가 있는 것 뿐이예요. 감사한 순간이지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행복이 함께 하느냐는 진짜로 운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행복하다면 그건 운이 좋아서예요. 저는 세월호 참사를 연구하고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을 만나고 세상을 떠난 제 몇몇 친구들을 보면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살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행복이라는 게 나와 함께 해줄 때가 있는 것 뿐이구나.

마지막은 사람에 대한 건데요.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해주셨던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뉴욕까지 가장 빨리가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이었어요. 친구들은 '비행기요.' 이런 답들을 내놨지만, 선생님의 답은 친구랑 가는 거였어요. 이 단순한 이야기가 제게는 오랫동안 참 중요했어요.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해요. 저는 A라는 사람과 하는 성공보다도, B라는 사람과 하는 실패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회는 냉정하니까 도전을 하게 되면 최대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지요. 그런데, 실패할 확률이 높은 길을 가더라도 B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과정이 A라는 사람과 함께하는 성공의 길보다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더 가까울 때가 있어요.

제 3자의 눈에서는 결과물만 보이지요. 그래서, 쉽사리 어떤 삶을 실패라고 단정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 길을 실제로 걷는 사람에게는 삶은 과정의 연속이지 결과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예요. 그래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인 경우가 많아요. 뉴욕까지 함께가고 싶은 사람이 생겨나면 어떻게든 챙기세요. 가까이 붙어서 놓치지 말고. 그게 삶을 보다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과제가 많은 힘든 수업이었을텐데, 한 학기동안 고생했어요. 수업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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