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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Jul 27. 2020

[독서]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1.

20대 초반 이 책을 읽으려 했을 때는 한 문장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독서에 실패했었다. 3년 전 우연히 다시 이 책을 만났을 때, 글이 너무나 다르게 읽혀 놀랐다. 이렇게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을 긁는 글이었구나. 여름방학이 되어, 스스로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없을까 고심하다 이 책을 다시 읽었다.


2.

내 삶과 글쓰기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던 소설들이 있다. 어린 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그랬고, 20대에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 그랬고, 그 이후에는 김훈의 <흑산>, 한강의 <소년이 온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가 그랬고, 지금 읽다가 멈춘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 그럴 것 같다.


<싯다르타>는 그런 소설이 아니다. 역사와 인간의 상처 속으로 깊게 들어가 아득하게 읊조리는 글이 아니라 그 삶을 관조하고 분석하는 소설이다.


3.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깨달음을 세속화하지 않으면서 신비화하지 않아 좋았고, 조금은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인데도 계속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문장들이 등장했다. 헤르만 헤세는 마지막 4페이지에 나오는 고빈다가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보게 되는 풍경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책 전체를 구성했을 것이다. 그는 지혜는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언어는 존재와 진실의 일면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그 내용을 언어로 전달해내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4.

인간의 사색과 성찰을 뇌 속의 뉴런 간의 전기적 신호로 재구성하고 그걸 컴퓨터에 저장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테슬라의 창립자인 일론 머스크가 만든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는 이식 가능한 뇌 칩을 만들어 뇌 속의 정보를 컴퓨터로 옮기겠다고 한다. 인간의 희로애락과 인지와 성찰과 기억이 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들을 정보화시켜 기본적으로 무수한 이진법의 기호로 변환시켜 데이터로 저장하겠다는 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모든 것을 기본 단위로 치환하고 그 기본단위의 조합으로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과학적 환원주의의 한 극단인 것을 분명하다.


서구의 과학적 환원주의는 종종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거대한 발전을 이뤄냈지만, 게놈 프로젝트에서 보았듯이 구성의 기본단위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뉴럴링크가 지향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에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는 세계가 미래라면, 그 세계에서  <싯다르타>에 나오는 윤회와 단일성과 명상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과연 우리는 그 세계관 속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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