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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Sep 03. 2020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황사영은 처가에서 젊은 처숙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기뻐했다. 어린 황사영이 보기에도 처숙부들의 재주와 그릇은 장인보다 뛰어나보였지만, 처숙부들은 맏형인 정약현의 위엄을 기꺼이 세워나갔다. 처숙부들은 어린 조카사위의 소년등고를 입에 담지 않았고, 경사스런 내색을 이웃에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또한 정약현의 위엄에서 나온 것이었다. 


황사영이 마을 앞 강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처숙부 중에 맏이인 정약전은 이 어린 조카사위가 사물로부터 직접 배우고 그 감춰진 뜻을 바로 깨달으니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는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처숙부 정약종은 황사영의 마음이 쓰임새에 닿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다. 아, 저 맑음을 어찌하랴. 저것이 세상의 환란에서 부지될 수 있을런가. 거기에 쓰임새를 마련해준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닐 듯도 싶었다. 


셋째 처숙부 정약용은 경전이나 인륜으로 채울 수 없는 아득하고 넓은 땅이 그 소년의 마음에 날 것으로 펼쳐져 있음을 알았지만, 정약용의 눈길은 늘 세상의 굴곡에 닿아 있어서 날 것이 날개 치는 그 멀고 드넓은 땅이 깊이 들여다보이지는 않았다. 


- <흑산> (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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