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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Sep 02. 2021

목공 4개월차

말 없이 대화하기

처음 목공소를 찾았을 때, 선생님이 물으셨다. 


- 목공 해보신 적 있으세요?

- 없는데요.

- 그럼 뭘 만들어보고 싶으세요?

- 그냥 사람들과 조금 멀리 있고 싶어요. 

- 잘 오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목공이었다. 


나무를 만지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고 숨 쉬는 게 편안해졌다. 소나무, 월넛, 참죽나무 같은 것들의 결을 손가락으로 훝고 있으면 뭔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존재들의 역사를 만나는 것 같았다. 나무와 나는 수십억년동안 같은 행성에서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온 생명체들이다.


밤 늦게 가슴이 갑갑할 때면, 거실에 나가 조용히 이런저런 글귀를 집성목 판에 새겨넣었다. 아이들이 깰까봐 불을 켜지 못하니 작은 촛불을 켜놓고 목공소에서 얻어온 집성목에 하나씩 하나씩 나무 섬유를 깔아내곤 했다. 글씨의 형체가 나타나는 게 매번 신기했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할걸. 그렇게 정신없이 글씨를 새기다 보면, 가슴에 얹힌 게 내려앉고 차분해지곤 했다. 


목공 선생님과 실없이 이야기하다 위로가 되는 말들을 듣곤 했다. 가구를 만들 때는 깔끔한 게 좋지만, 서각을 하거나 작품을 만들려고 할 때는 상처가 많은 나무들이 더 좋다. 그런 나무들이 더 아릅답다. 깨졌다 붙은 나무들이 더 단단하다. 옹이가 있는 부분들은 줄기를 내놓았던 부분이다. 맞다. 세상에 가지를 뻗는다는 건 그 몸통에 상처를 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수년간 건조시켜 수액을 빼낸 나무에 기름칠을 하면, 건조되기 이전 나무의 원색이 드러난다. 목공을 하다가 가장 찬란한 순간은 작품을 완성해 기름을 칠하고 그 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초보자일수록 빨리 기름을 칠하고 싶어한다. 멋진 걸 빨리 보고 싶고, 자기 노동의 성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나무는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가끔 욕심이 나서 서둘러 작업하면, 지나가는 말로 선생님은 말하셨다. 뭐하러 서둘르냐고. 목공이라는 게 돈 내고 더 힘든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인데, 그걸 뭐하러 빨리빨리 하려고 애쓰냐고. 천천히 끝까지 하는 거라고. 목공을 할 때 뭔가 힘이 들어간다 싶으면 잘못하고 있는 걸 수 있다고. 나무의 결을 보고 결에 맞춰서 작업을 하면 힘을 무리하게 줄 일이 없고, 그러다가 막히면 뒤로 물러서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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