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버킷리스트
"나 다녀올게"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가 집을 떠났다.
남편의 지친 노동 끝에 드디어 이직의 기회가 찾아왔고, 다른 회사로 가기 전 한 달의 공백이 생겼다.
감격의 한 달이라는 자유. 말 그대로 '자유'다.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획득한 셈이다.
이제 드디어!!!!
내 마음속에 저장해 놓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 계획은 바로 남편에게 제주도를 선물하는 것!
"남편 제주도 다 가져! 그동안 고생했어"
힘들었던 마음들 다 비우고 버려서 리셋하고
제주도안에 스며들다 오길 바랬다.
남편에게 묵은 때 같이 쌓여있는 업무 스트레스를
멍 때리는 시간과 맞바꿔주고 싶었다.
그저 온전한 세끼를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마트 구경을 하고 차를 마시는
평범한 일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장소는 왜 제주도였을까?
우리 가족에게 제주도는
단순한 여행을 즐기는 곳이 아니었다.
상처를 아물게 만들어 주는
빨간약 같은 회복의 장소였다.
비자림 숲 안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맑아짐을 느꼈다. 피톤치드를 한껏 들이마시고 내쉬면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바쁜 세상과 잠시 단절된 공간
이곳에서 느림의 미학을 되새겨보곤 하였다.
투명하고 잔잔한 파도가 비현실적으로 일렁이는
월정리 앞바다 우리의 마음도 잔잔해짐을 느꼈다.
나의 존재가 감사하다고 느껴졌다.
천국을 그린다면 아름다운 이곳을 그릴 테니
감사할 수밖에!
함덕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나의 하루를 설레게 만들었다. 에매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는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기대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일상도 여행처럼 매일 기대되는 하루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아침마다 기계처럼 지옥철로 향하는 남편의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매일 여행하는 설렘을 가지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설렘을 가지려면 몇 년은 걸리겠다.
그전에 일단 남편 혼자 경험하고 오라며
제주도를 선물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 살기를 계획했지만
남편이 보름 살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집에 있는 나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 달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순간 멍해졌다.
남편이 떠나면 또다시 혼자 독박 육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그만큼 나도 간절했나 보다.
자유로운 남편을 만나는 것이!
그가 떠난 날
나의 일상은 별반 다를 바 없이
연장선을 달리고 있었다.
내 생활에 그가 없어도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것이
서글펐다.
하지만 마음은 가벼운 깃털이 되어 있었다.
일하러 떠난 것이 아니기에 안도하였다.
남편의 빈자리는 남겨둔 채 나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