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넘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나의 번아웃 증후군 이야기

by 최송희


둘째 출산 임박 이틀 전

한복 주문이 들어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미싱 앞에 앉았다.


하루 끝맺음을 지어야 할 시간

나는 한복을 짓고 있다.

고요한 새벽시간에는 미싱 소리가 유난히 크다.

드르륵드르륵

옆집 소음으로 번질까 마음 한편이 무거웠지만

마지막 태교라 생각하며 묵묵하게 그 일을 해내었다. 그리고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출산 후 조리원에서 퇴소한 지 이틀 만에

다시 미싱 앞에 앉았다.

추석 이후의 주문이라 더더욱 계획에 없던 주문 1건

모유수유로 지친 마음을 일로 달랜다 생각하며

그날 밤에도 나는 미싱 페달을 밟으며 달렸다.

그렇게 나를 증명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모유수유로 통잠도 못 자는 신세로 전락한 마당에 잠을 줄여가며 일도 하고 짬짬이 젖도 물렸다.

새벽시간에도 나의 시계는 재깍재깍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복 판매와 육아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듯 이어나가고 있었다.

열정이 넘치고 넘쳐서 나 자신이 어떻게 지쳐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말 그대로 나를 열정으로 불태워 버렸더니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녹아내려 없어져 버렸다.


그 이후에도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1년에 두 번 있는 추석, 설 한복 시즌이 돌아오면 잠을 포기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둘째를 키우면서도 나의 일하는 영역은 지키고 싶었다.


시간은 흘러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시기가

찾아왔다.

둘째를 등원시키고 약 2년 만에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 나에게 말했다.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하고 싶지 않다고!

나 건들지 마!"


둘째 등원 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기대

핸드폰을 보다가 멍 때리 다를 한 달 동안 반복하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하기 싫었으니까..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을 풀 충전하고 오후에는 집안일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였다.

다음날 또다시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무기력감이 나를 덮쳤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하던 나였다.

잠시 쉬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놈의 열정 탓이었나?

나의 모든 멘탈이 무너져 산산조각 나 나 자신이

고장 난 거 같았다.


알고 보니 나에게 번아웃이 찾아온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

나의 증상을 여기저기 알아보니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정신적

신체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에 빠진다."


나를 다 태워 모두 소진한 그 기분

그때의 나와 너무 닮아있었다.

우울한 기분보다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모든 걸 멈춰버리고 싶은 감정

이 세상을 정지 버튼으로 눌러놓고 나 혼자

멍하니 있고 싶은 심정

하지만 야속하게 시곗바늘은 돌아가고

해는 지고 달이 떴다.


어떤 일에 관심이 생기면 욕심과 의욕, 열정이 철철 넘쳐 매번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고 무너지고 넘어지던 나였다.

그래서 정작 결과는 없고 물음표만을 남기고 끝이 났었다.

작곡을 전공했지만, 재즈 피아노를 쳤지만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웹디자인 학원을 다녔지만

결과는 얻지 못하고 물음표로 끝이 난 것 들이다.


이번만큼은 물음표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임신 출산이라는 환경 안에 갇혀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과한 열정만을 나 자신에게 강요한 건 아닌지 그동안 밀려있던 일기를 쓰며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였다.

힘들었다 지쳤었다는 마음속 진심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앞서 나가다 보니

힘든 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렇게 지쳤었구나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글로 추스르고 다스렸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데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쉬고 싶었구나.



지금의 나 그리고 둘째는 5살

이제 미싱 앞에 앉아있는 하루를 살고 있지 않다.

그렇게 설레던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바뀌었다.


열정이 넘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또다시 열정의 불꽃이

튀어나와 나를 괴롭힐까 걱정이 된다.

그럴 때는 열정은 뒤로 잠시 숨겨두고

매일 꾸준함과 습관, 루틴으로 나를 무장하려 한다.

열정이 철철 넘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