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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희 Feb 15. 2023

남편과 광장시장 육회 한 접시

평일 낮시간의 느긋한 자유


햇빛이 따스해서 봄날인지 착각했던 어느 주말오전

달달한 꿀 같은 늦잠을 자다가 문득

공복일 것 같은 아이들의 뱃속 사정이

생각이나 번쩍 눈이 떠졌다

마음은 급했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슬렁어슬렁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거리가 뭐 있나 냉장고를 기웃기웃거리다가

무심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티브이화면을

보았더니 "나 혼자 산다"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게스트는 천정명 배우

스콘을 만드려고 방산시장에 들러 포장제품을

구입하고 광장시장에 들러 순대와 떡볶이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나에게도 익숙한 광장시장

그리고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코로나가 터지기 전 한복을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한복을 구경 다녀왔던 그해봄을 떠올렸다.



안쪽에 있는 한복골목을 지나 메인거리로 나오면

먹거리 세상이 펼쳐진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쌀떡볶이

한입에 넣기에는 부담이 되는 크기의 왕순대

지글지글 식용유를 감싸 안으며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녹두전

작은골목사이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육회집들

겨자소스를 찍어먹으면

계속 먹게 된다는 마약김밥까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시장의 활기를 느끼곤 했다

코로나 전에는 외국인관광객이 한가득이었던

기다란 의자에는 지긋하신 나이 든 어르신분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집집마다 메뉴도 비슷해 보이고 그 집이

그 집 같지만 맛에 있어서는 차이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천정명 배우 또한 여지없이

광장시장에 방문하여 먹방을 보여줬다

서비스로 나오는 뜨끈한 어묵국물 호로록

순간, 나도!!!!



"남편과 광장시장에 가서

막걸리에 딱 육회 한 접시만 먹고 싶다"



현실적으로 남편과 광장시장을 가는 일은

굉장히 복잡한 일이다.

혼자 가는 거라면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에 내리면 쉬운 일이 되는데 남편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평일에 남편의 스케줄이 없는 자유의 몸이어야

한다 (이것부터가 진입장벽이다)

휴가를 내서 간다고 하더라도

남편은 절대 지하철은 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뚜벅이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만

집 앞마트를 가도 차로 이동하는 사람이다


광장시장에 차를 끌고 가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도로에 주차장이 있긴 하나 주차비로 만원 이상

낼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오천 원 이상의 주차비는

억울한 마음이 생겨 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차를 끌고 가더라도 육회라는 좋은 안주거리에

술을 또 함께 마시지 못한다


만약 평일에 휴가를 내었다 하더라도

남편을 꼬셔 육회 한 접시 먹겠다며

지하철을 타고 가자고 하기에는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면

또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집에서 하루라도 편히 쉬면서

육회 배달을 찾는 것이 낫겠다 싶다



결국 평일낮시간에 내 남편과 여유로운 시간이

확보된 상태에서 막걸리에 육회 한 접시 먹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남편이 퇴사를 한다면?

우리 부부가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면?


당당하게 남편에게 지하철 타자! 를 선포하며

우유빛깔 막걸리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육회한입 노른자 섞어 배와 곁들여 입안에 쏙 넣으면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평일의 여유로운 낮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평범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을

남편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 자유 그리고 남편의 퇴사

어찌 보면 엄청 큰 부를 원하는 것도 아닌  

단지 평일 낮시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육회 한 접시 먹고 싶은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



단지 그뿐이다.



그런 날이 나에게 내 남편에게 반드시

찾아오기를 아니 쟁취하기를!!!

오늘도 열심히 달려본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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