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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톨 May 15. 2017

낯선 사람

돌아와서 쓰는 이야기

한국에 돌아와서 쓰는 이야기.


드라마 <도깨비>에서 여주인공은 도깨비와 헤어질 때 그와의 기억마저 잊게 될 거란 걸 예감했다. 그래서 절대 잊지 않고 싶은 것들을 짧은 시간 동안 날림으로 써내려갔다. 마찬가지로 나도 같은 이유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급하게 캐나다에서의 기억을 써내려갔다. 그중엔 이런 글도 있다.


출국 비행 시 느꼈던 막막함이 떠오른다.
정착하고는 괜찮았지만,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하는 그 기분은
결코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 저 글을 썼다고? 귀국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면서 짧았던 몇 달 간의 기억은 어느덧 흐릿해지고 미화되고 있다. 아마 부정적인 기억은 수첩 속, 그리고 내가 쓴 블로그 글을 보지 않았다면 금방 '아냐, 좋기만 했는걸'하고 부인했을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두 소중한 경험의 일부이니 이제는 그저 최대한 많은 기억을 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랄 뿐.


돌아오고 난 후 가족과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과 길게 대화해본 적이 있던가? 아마 없는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이 개방적이라고 생각만 해왔지만 몇 달 진을 치고 지내며 실제로 나는 낯선 사람들과 많은 것을 나누면서 개방적인 삶의 일부를 경험했다.

 


다시 만난 Karen


집에 있는 것보단 밖에 나가는 게 낫다는 일념 하에 그날도 스타벅스에 앉아있었다. 우연히 옆에 있던 중년의 멋쟁이 여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자신 있게 내가 할 수 있다고 대답다. 그런데 막상 보니 문제는 용량이 부족해서 다른 어떤 기능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용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고쳐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나 할까.

 

자신 있다고 말해 놓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안되니까 앱을 지워도 되겠냐, 블루투스로 해봐도 되겠냐 쩔쩔매며 역으로 몇 분째 질문을 하다, 다행히 갖고 있던 USB 케이블로 내 노트북과 핸드폰을 연결해서 사진을 올릴 수 있었다. 해결은 쉬웠는데 방법을 찾기까지가 어려웠던 뭐 그런 상황.  


그러는 중 내 착각이 시작됐다. 중간에 자꾸 내 이름을 물어보고 스펠링을 확인하길래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지? 나한테 선물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커피 한 잔? 이번엔 내가 핸드폰과 씨름할 동안 옆에서 카드에 열심히 글을 쓰길래 나는 또, 나한테 카드를 쓰는 건가? 그러나 내가 착각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Karen과는 서로에 대해 소개하고 꽤 오래 대화를 나누다 언제 만날 일이 또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귀국을 한 달 앞둔 시점 나는 1:1 영어과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Karen을 떠올렸다. Karen의 직업이 영어교사였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지금의 선으로 보니, 낯선 사람에게 연락을 해 볼 생각을 하다니. 그 시절의 나  대견하네) 고맙게도 곧바로 답이 와서 한 달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아주 저렴하게 튜터링을 받았다.


Karen이 영어선생님이라서 전화를 했지만 처음엔 그가 영어선생님이기 때문에 전화하기를 망설였다. 몇 주 전 소개를 할 때 그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했고 나에게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았다. 그렇게 대화하고 훈훈하게 헤어졌는데 그런 Karen을 내가 다시 찾다니. 잠깐. 내가 Karen의 전략에 넘어간 건 아닐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튜터링 기간은 만족스러웠다. 저렴한 비용에, 이미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믿을 수 있는 상대, 내 편의를 최대한 맞춰주고, 매시간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



한 곳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 때면 대여섯에 한 번 꼴은 낯선 누군가와 (굳이 말하자면 딱히 의미 있는 것은 아닌) 대화를 길게 하는 일이 생겼다.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 한국인 친구와 "잘 지내야 돼. 영어공부 열심히 해. 잘할 거야"하며 우리끼리의 슬픈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영어 배우러 왔으면 영어로 대화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60대의 Larry에게 충고를 들었다. 그리고 친구와 나는 그곳이 영어학원인지 착각할 정도로 한참을 붙들려 발음교정을 받았다.


학원에서 혼자 걷는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걸어주는 길동무(?) 서비스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취미가 비슷하면 좋겠다, 나이가 비슷하면 좋겠다 등 상대방에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던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 속에서, 왜 나 포함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위험하지 않나'라는 답을 먼저 내놓게 되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이미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혼자의 삶이 존중받는 건 세계 여느 곳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 그런데 함께 따라오는 어울림의 양상은 전혀 달라서 흥미롭다. 이럴 때일수록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되, 필요에 따라, 낯선 사람과 유대를 가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머지않은 어느 날엔 낯선 이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되기를. 물론 아직은 개인의 의지보다 환경 조성이 먼저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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