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탄생
“너 고모 된다.”
처음 저 말을 들었던 날이 떠오른다. 영 쑥스럽고, 어색하던 그 날의 그 느낌.
보통 무엇이 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데 비해 ‘고모’가 되는 건 그렇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고모가 됐다. 그런데 그럼에도 ‘고모’란 말이 어색했다. 아마 조카 하준이도 그랬을 거다.
어느 날이었다. 혼자 처음 오빠네에 놀러 갔던 날. 준이와 단둘이 거실에 남게 됐다. 당시 준이는 목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였다. 태어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고, 나와 두 번째 만난 날이었다. 그맘때의 아기가 고모를 알아볼 리 없다. 어색한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그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어색하게 조카의 두 다리를 잡고 위아래로 접었다 폈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준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이게 뭐지, 이 사람은 누구지. 울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던 준이는 바로 울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 준이가 네 살이 됐을 때였다. 타지 생활을 하고 있던 난 오랜만에 본가에서 잠을 잤다. 명절이었는지 그날은 준이도 집에 와 있었다. 비몽사몽 준이 목소리에 이끌려 방문을 열고 나온 내게 조카는 이렇게 말했다.
“고모 잘 잤어?”
전율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때 확인했다. 관계란 단순한 말이 아닌 ‘의미’가 담긴 말을 건넬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 사이에 의미있는 말을 먼저 건넨 건 내가 아닌 준이였다. 그러니까 사실 고백하건대 준이가 내게 주는 기쁨이 훨씬 큼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날이기도 하다.
작은 입술로 오물오물 ‘고모’하고 불러주는 유일한 존재.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우린 멀리 떨어져 있고, 사실상 자주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마음 같아선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마음을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같이 읽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원하면 언제든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그렇다면, 언제든 고모가 ‘곁’에 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