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무게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by 하얀

조카 하준이가 여섯 살을 앞둔 늦가을이었다. 고열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준이를 찾았다. 그리고 며칠간 오빠네에 머물다 함께 퇴원 수속을 밟았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선 형 하준이를 보고 동생 민준인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민준인 아직 “안녕”과 “맛있다” 등 몇 가지 말밖에 하지 못하는 두 살이었다. 그럼에도 제법 정확한 발음으로 형을 반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준이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준이가 느끼는 첫째의 스트레스를.


하준이에게 마음이 가는 건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아서다. 예민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다. 생각해보면 20대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도 부모님 특히 엄마의 장남에 대한 사랑이 늘 서운했다. 내 것은 없거나 적었고, 그 슬픔은 혼자 해소시켜야만 했다. 그런데 분명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덜 외롭고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노력’으로 실현 가능한 행복도 있음을 알게 된 지금 느끼는 아쉬움이다.


그래서일까. 하준이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하게 될 모든 말 역시 사랑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랑해 준아. 이 세상 누구보다 넌 내게 소중한 존재란다. 나의 조카로 태어나줘서, 그게 너라서 고마워. 그리고 그래서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 고모보다, 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널 더 사랑했던 사람이 있단다.




한참 뒤 어머니가 물었다.


“어땠어?”
한참 뒤 아버지가 말했다.
“좋아서 혼났어.”

얼마 뒤 어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가 말했다.
“슬프다……”


두 사람은 다시 나무 밑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때부터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쉬지 않고 재잘댔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노랫소린 이미 흩어져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아득하고 정갈한 여운이 계곡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나무들은 풍요롭게 너울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야릇하고 암시적인 침묵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흔들려야 할 것은 흔들리라고, 벌어져야 할 것은 벌어지라고,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중략)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 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바야흐로 진짜 여름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일지 모른다. 숨기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려운 것. 그래서 늘 노력해야만 하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막 사랑을 시작한, 어린 연인의 사랑을 묘사한 부분이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글을 쓴 주인공이 어린 연인의 ‘아들’이라는 거다. 가장 아플 때에, 사랑하는 부모가 가장 행복했을 순간을 소설 속 주인공(아들)은 상상한다. 어린 부모가 되기 전 그들은 그저 사랑을 몹시 원했고, 아무도 그걸 막지 못했으며, 그 모든 게 결국, 그들을 행복하게 했을 거다.


준이가 꼭 믿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사랑’이다. 사랑은 믿는 것보다 의심하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깨닫기 위해선 얼마나 긴 시간과 버팀이 필요한 것일까. 소설 속 주인공은 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픈 아들 생각뿐이고, 어린 자식은 오히려 그런 부모를 걱정한다. 뭐, 이런 사랑이 다 있나 싶을 때 작가는 이들을 통해 사랑이 꼭 기쁨만이 아님을 말한다. 사랑하기에 아플 수밖에 없는 것도 삶이라고. 어쩌면 그게 우리 모두의 사랑이라고. 그러니 인정하자고. “네가 내 슬픔이어서 기뻐.”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란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부모가 된다. 보통의 연인은 그 누구보다 서롤 사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부모가 되면 자식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대개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겁을 먹게 되는게 아닐까. ‘혹시 아픈 덴 없을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어린 부모의 대화를 빌려 설명하자면, 어느 날 준이의 엄마 아빠 역시 이런 대화를 나눴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얘가 꿈이 있는 아이였음 좋겠어.”, “나는 얘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였으면 좋겠어.”라고.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자식의 안녕을 비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린 이 일을 반복해왔다.


작가는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문득 ‘아이는 왜 태어날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운명’ 같은 건 아닐까. 낳은 것이 아니라 낳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준이는 어떻게 태어나게 된 걸까. 준이 역시 자라서 어른이 되면 부모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니까. 너의 존재가 사랑임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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