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언젠가 하준이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볼 기회가 생긴다면, 사람을 살게 해주는 건 단연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강한 사람이 강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곧 '사람' 덕분이었으리라 믿는다. 신뢰를 바탕으로 했던 누군가와의 관계가 그러할 수도 있고, 혹은 단단한 사람을 보며 상상하며 자신을 단련시킨 덕일지도 모른다. 전자의 경우 '가족'을 통해 '사랑'을 통해 시나브로, 저절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삶은 만만치 않다. 과연 그런 행운을 타고 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후자처럼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바람도 씨앗들을 퍼뜨려 주었다.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께 버드나무와 갈대가, 풀밭과 기름진 땅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았다. 산토끼나 멧돼지들을 잡으려고 이 적막한 산속으로 올라온 사냥꾼들은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나, 그것을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부피에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가 한 일이라고 의심했다면 그의 일에 훼방을 놓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나 관리들이나 누군들 그처럼 고결하고 훌륭한 일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계속할 수 있다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십대인 화자는 쉰다섯의 한 남자를 만난다. 하나뿐인 가족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그가 관심 갖는 일은 그저 하나. 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발 디딘 땅이 누구의 것인지 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오로지 좋은 씨앗을 골라 나무를 심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황무지를 무성한 숲으로 만든다. 지금도 나는 그가 “얼마나 많은 땅을 나무로 덮”은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행한다. 그 일을 하는 동안 그에게 실패와 좌절이 없었을까. 아니다, 그에게도 시련은 반복된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할 뿐이다. 소설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살다 보면 실제로 이런 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리고 그런 선한 이들을 믿는다면 말이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신뢰를 저버린 사람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살게 하는 것 역시 결국, 사람이다.
살다 보면 자꾸만 '낯선 곳'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손 내미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는 그 손을 잡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손을 놓고 난 후에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타인의 손을 잡게 되는 날은 계속해서 다가온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잘하는 것보다 돈과 명예, 성공을 거머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연히 만난 ‘단단한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놓쳐버린 손이 있더라도 그래야만 길을 잃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사람의 손을 잡으면 좋을 것일까. 정답은 없다. 선택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