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5/24)
“돌고래 봤어요?” “돌고래는요?”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안부를 이런 식으로 묻는다. 바멍. 그런데 또 난 그 말이 채찍질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짐과 동시에 책임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그래 봐야 목, 금, 토, 일 나흘 짼데, 거기다 목요일엔 저녁 즈음에 도착해 잠시 바다를 봤을 뿐인데도 그랬다. 채찍질 같은 말에 이끌려 1시간 넘게 죽치고 같은 장소를 서성거렸다. 그러다 마주친 내 또래의 올레꾼?도 만났고(물론 혼자 바라보기만 했다), 어린 두 아들과 남편과 바다를 찾은 여성분도 계셨다. 체격이 너무 왜소해 몸이 아프신가 보다 혼자 생각했는데 약간 떨어진 곳에서 홀로 올레길을 걷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바위에 몸을 맡긴 청춘에게 말을 건네는 걸 언뜻 들었다. 혼자 왔냐, 직장인이냐, 얼마나 있을 거냐. 그리고 “나는 몸이 좀 아프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그래도 그 말에 마음이 쿵, 했다.
어린 아들은 “엄마도 내려오세요”하고 손짓했다. 경사진 데다가 무엇보다 큰 바위들을 해치고 가야 하는 돌길이라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나 역시 내려가 보지 못한 곳이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다리가 아파서 갈 수가 없어”라고 답했다. 서로 알고 있는 마음이었을 거다. 엄마가 내려왔으면 하는 아들의 마음을 엄마도 알고, 엄마가 쉽게 내려올 수 없는 곳이란 것을 아들도 알고 있었겠지. 그래도 함께하고 싶었을 거다. 아무도 쉽게 못한 말을 그래도 동심이라 할 수 있었던 거고. 한참을 바위에 앉아있던 엄마는 몇 개의 바위를 밟고 내려가 보기도 했다. 그때 둘째였나가 멀찍이 있던 형과 아빠에게 소리치던 게 선명하다. “아빠, 빨리 오세요. 엄마가 내려와요. 빨리 오시라고요” 아들은 너무 작아 휘청거리는 엄마를 잘 잡아주지 못했다. 엄마 키의 반밖에 되지 못하는 아들은 그래도 엄마가 기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감싸 안아주고 싶어 했다.
같은 자리에서 돌고래를 본 건 그다음 날이었다. 당연히 옆에 있던 사람들도 바뀌어있었다. 처음엔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저게 돌고래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보다 너무 일부만 보였다. 그래도 좋았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길게 한 자리를 지킨 건 겨우 어제, 오늘 이틀뿐이었으니까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옆에서 물장난을 치던 어린 두 딸이 있는 가족에게 돌고래가 있는 거 같다, 고 말했으나 아저씨는 멋쩍어하며 아이들이 돌고래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돌고래를 보며 나보다 돌고래를 보면 더 기뻐했을 남자친구가 떠올랐다. 같이 보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조금은 지쳐있었던 전날 보았던 두 얼굴도 떠올랐다. 그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어떤 사연들로 이곳에 오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돌고래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