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아줄

제주도 바다는 푸르다

열일곱번째날(6/6)

by 하얀


P1120507.JPG 서우봉 정자에게 바라본 함덕해수욕장 모습.
P1120514.JPG 해수욕장엔 사람 수보다 더 많아 보이는 텐트들이 즐비했다.

역시나 좋은 풍경은 함께 보는 것이 더 좋다.


정 선배는 6개월 만에 이렇게 나와보는 거라고 말했다. 작년 여름휴가 즈음에 선배를 만났을 때도 그녀는 비슷한 말을 했다. 나 요새 집순이야. 이날 만난 선배는 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일상을 말해주었다. 나 요새 누워만 있어. 힘들어서일까. 지금의 일보다 오래전부터 누적돼오던 피로 때문은 아닐까요, 나는 이런 류의 말을 건넸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던 선배는 음주(가무)를 즐기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술은요. 이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술은 매일 마시지. 물로는 가시지 않는 갈증이 있어. 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맥주를 사가지.


애정했던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광고 카피처럼 맥주 한잔에 기분이 나아지면, 세상은 이미 천국일걸...” 그리고 bgm이 깔린다. 상황은 환자의 죽음 후 우울해하는 동료 의사에게 주인공 봉달희가 맥주를 권하자 이를 거절하며 그녀가 하는 말이었다. 불 끄란 말과 함께(아마도????) 공허한 표정을 짓던 등장인물이 떠오른다. 맥주 한 모금에 기분이 나아지면 얼마나 좋을까(맥주 한잔은 나에게 좀 많다. 실제로 이날 한잔 마시고 좀 취기가 올라왔다. 넣어둬, 넣어둬)


제주도 바다 풍경은 모두 다르다. 느낌도 다르다. 먼 느낌의 바다도 있고, 가까운 느낌의 바다도 있다. 그것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도 결정되지만 물리적 거리보단 심리적 거리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선배는 바다에 들어가 본 게 언젠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 경우 역시 제주에 살 때 바다에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관광 차원에서 찾은 우도 바다에 살짝 손을 담가보는 것이 전부였다(바닷물이 찰 때였다). 생각해보면 그것 참 이상한 일이었다. 바다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것은 다 커버렸기 때문일까.


선배는 지금 일하는 것은 편하다고 말했다. 상사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사람과 부딪히는 것이 없다고. 하긴 내가 두 번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마다 창업을 추천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이날 운전을 하며 이런 말도 했다. 서울에서 일할 때는 너무 치열했다고. 그래야만 하는 거 같았다고. 그런데 또 지금은 너무 편한데, 그만큼 능력이 퇴화되는 기분도 든다고.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 그녀와 바다를 봤다. 어느 날 훌쩍 바다를 향해 놀러 갔던 것처럼. 훌쩍. 맛 좋은 고깃집을 찾아선 다른 동료와 통화하기도 했다. 우리 셋은 일하다 말고 함께 아이스크림 따위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곤 했다. 그때 누군가는 늘 우는 소리를 내었는데, 훌쩍훌쩍.


텐트를 치고 바다풍경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선배, 저 사람들은 몇 박 며칠로 놀러 왔을까요. 글쎄, 그래도 텐트도 치고 좋은 게. 맞다. 이왕 놀러온 거 발도 좀 담그고 쉬멍놀멍하면 좋지. 이날 본 제주도 바다는 푸르렀다. 콧바람을 쐰 선배도 좋다고 했다. 선배의 바다도 늘 푸프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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