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그리고 스무번째날(6/8~9)
어라, 그러니까 정말이지 몰랐는데, 어제 길에서 처음 본 아저씨한테 앞 도로까지만 태워달라고 뻔뻔하게 굴어놓고.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제주도에 온 지 얼마나 됐냐는 말에 보름 됐다고 말했다가, 아니라고 보름은 안됐고, 이주 정도 됐다고 말했는데(사실 그사이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정말 보름이 다됐구나.
사실 솔직히 말하건대 여행이, 한 달 살기가 소름 끼치게 좋지만은 않다. 짝꿍이 보고 싶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너무너무 보고 싶고. 운 나쁘면 벌레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상도 못 한 벌레를 너무 자주 보고 있고(다행히 xx벌레는 없다. 다만 다리 많은 친구들이 주로 보인다). 겁 많은 나를 잠시 과신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늦은 새벽 운 나쁘면 날이 밝아올 때 즈음에서야 잠들 수 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스무 살 때 한 작가를 만났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녀는 문득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당시 나는 여행 경험이 없었고, 주로 글을 통해 접해온 다른 이들의 여행기엔 찬양이 가득했었던 탓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나는 꽤 당황했었다. 아마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났겠지.
그렇담 이번 여행을 마치고 누군가 여행이 좋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하게 될까.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건 '돌고래'를 봤던 날도 있었다는 것.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한 번 보기도 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점프'하지 않는 모습에 기대에 못 미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신비로웠지만, 다 볼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다 볼 수 없을 거 같았으니까. 별 미련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내 짝꿍은 아닌가 보다. 안부 인사를 "돌고래 봤어요?"라고 묻기 시작했던 그이는 아직도 돌고래, 돌고래 한다(돌문어나 먹어여). 그래서 또 누워만 있던 중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네이버 후기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정읍'에 갔었다. 2번 방문에 2번 모두 봤다는 후기가 남겨져 있던 곳으로. 다른 후기에도 대정에서라면 돌고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쓰여있었는데, 난 3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렀지만 이번엔 돌고래의 지느러미도 보지 못했다.
어라, 이상하게 그러니 좀 오기가 생기는 거 같았다. 별 욕심 없었는데,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높이 떠오른 돌고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역시, 사람은 욕심(혹은 자만)을 버려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날엔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일전에 숙소 앞에서 돌고래를 봤으니 그곳에 자리잡기로 한 것이다. 2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며 이번에도 역시 돌고래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내다가 어제에 이어 이런 생각도 했다. 바다가 워낙 넓으니까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에서 뛰어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담, 할 수 없지 뭐.
오늘은 엄마가 오고, 엄마가 간 후 한 주 후엔 짝꿍이 다시 제주도를 찾는다. 그때는 꼭 짝꿍이 돌고래를 봤으면 좋겠다. 처음에 돌고래를 봤을 때도 짝꿍과 함께 봤으면 했다. 얼마나 좋아할지 아니까. 아마 돌고래 소리를 내었겠지. 어제, 오늘 지금 보이지 않아도 되니, 짝꿍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나줘, 라고 생각했었다. 그 주문이 먹힐까. 우선,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제주는 내일부터 1주일 넘게 비가 올 예정이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만약 돌고래를 보게 된다면, 어라 이것 참 운이 좋군.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려나봐.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대신 볼 수 없게 된다면, 그냥 '그날'의 그이들은 운이 좋았었나봐, 라고 생각하는 거다. 어찌 됐든 돌고래들은 계속해서 전진, 전진하고 있을 테니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앞으로 걸어 나가면 또 만나는 일이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