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아줄

엄마가 돌아왔다 2

스물두 번째 날(6/11)

by 하얀

엄마가 도착하기 전부터 일기예보만 봤던 나는 첫째날도, 둘째날, 셋째날도 예보만 들여다봤다. 잠들기 전만 해도 비가 온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일어나 보니 비도 내리지 않았고, 일기예보도 바뀌어 있었다. 전날 저녁부터 꽤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다행히 다음날까지 내리지 않았다. 잠시 왔다가 그치는 정도였고. 그렇담 서둘러야 했다. 치고 빠지기 대작전. 사진 엄청 많이 남기기 작전. 마치 장마철에 제주를 찾지 않은 것처럼. 마치 여행을 잘 다녀온 것처럼.


엄마는 한라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너도 한 번 도전해봐, 라고 말하던 엄마에게 그럼 나는 아래에서 기다리겠다고 전날 말했었다. 비도 온다고 한 상태였고, 제대로 된 신발 같은 게 준비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입구 쪽에서 사진만 찍기로 약속하고, 천천히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선 게 11시 40분경이었다. 성판악에 도착할 때쯤에도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다 도착해선 그쳤던 거 같다. "엄만 정상까지 갔다 와도 돼. 난 그냥 기다리지 뭐." 너만 없음 갈 텐데, 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엄마는 곧 태도를 바꿨다.


아냐, 사실 혼자서는 무서워.


아, 엄마도 무서운 게 있구나. 하긴 엄마도 겁이 많다. 엄마는 벌레를 잡을 수 있나? 한 번도 보지 못한 거 같다. 그러니까 사실 엄마는 내 엄마일 뿐. 엄마라고 겁이 없다거나 용감하다거나 그렇진 않다. 다만 엄마니까, 딸이니까, 란 말로 기억하지 못할 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멧돼지를 만났을 때 이렇게 대처하세요'란 표지판을 보고 나는 알게 모르게 겁을 먹었나보다. 그렇다. 사실 나는 'xx주의'를 무서워한다. 예를 들면 뱀 출현 주의 같은 것. 천천히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데 자꾸 숲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았다. 사실 무슨 소리가 맞긴 할 거다. 숲 속 친구들 소리였겠지(나는 그 친구가 누군지 몰라 살짝 겁이 났다).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다"란 말에 "쟤는, 쟤는" 하면서도. 엄마는 내 뒤로 숨었다. 그렇다. 엄마는 나보다 체력이 더 좋고, 산길이나 미끄러운 길도 더 잘 걸을 뿐. 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10분 거리를 사진을 찍어가며 20분 걸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낮게 나는 모습이 너무 거대해 보여 배트맨인 줄 알았던 까마귀도 보고. '까악, 까악' 그곳엔 까마귀가 참 많았다.



P1120741.JPG 배트맨인 줄 알았던 까마귀
이제 그만 가자.



먼저 내려가자고 한 것은 엄마였다. 다행이다. 헤헤헤. 정상에 오르긴 무리고, 외돌개에 가자 했다. 그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시 올레시장을 찾았다. 난 해물뚝배기 엄만 자리물회. 해물뚝배기에 들어있는 전복이며, 조개도 전부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반면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 그것들을 떠서 엄마에게 주었다. 그리고 식당 이모에게 물었다. "엉또폭포는 오늘 가도 별 볼 일 없을까요?" "거긴, 비가 많이 와야 해요. 아마 안 보일 거예요." 나는 또 물었다. 다음 질문은 약간 난제에 속했다. 그렇담 "천지연 폭포와 천제연 폭포 둘 중에 어디가 더 좋아요?" 이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거기서 거기예요. 여기서는 천지연 폭포가 더 가까워요" 잠시 후 다시 테이블을 찾은 이모는 덧붙여 마음을 굳히는 말을 해줬다. "천지연 가서 새연교도 보세요"


유레카. 엄마는 다리를 좋아한다.

P1120830.JPG


엄마는 왜 다리를 좋아하는 걸까. 큰 다리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냥 작고 짧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다리에서도 꼭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왜일까.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까. 어쨌든 천지연 폭포는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기대를 안 한 탓인지도 몰랐다. 아님 정방폭포에 너무 실망했었던 탓인지도 모르고. 천지연 폭포는 가는 길도 예뻤다. 덕분에 조금 걸을 수 있었고, 폭포 앞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찰칵. 급하게 새연교로 이동. 찰칵. 급하게 택시를 타고 외돌개로 이동. 새연교 쪽에서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은 "2 킬도 안되는데 걸어가시지 그러셨어요"라고 말하셨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이날은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 시장부터 천지연폭포까지 다시 외돌개까지 모두 가까운 거리였다. 다행히 정면 위치에서 바라본 외돌개는 잘 보였다. 그러나 조금 걸어가면 더 멋지게 볼 수 있던 길에선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담 다시 이동해야지. 그렇게 택시를 타고 다시 목욕탕을 찾았다. 100원이면 산다던 때타월은 2000원이었고(나는 1000원이면 살 지 알았다), 딱 한 번 쓸 수 있게 파우치 형태로 포장된 샴푸, 린스는 각각 한 장에 1000원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계산해야 했지만, 탕에 몸을 담그니 스르르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탕에서 나오면 다시 아니 너무 비싼 거 아니야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목욕까지 잘 마친 우리는 대망의 '갈치조림'을 먹기로 했다.


엄마는 갈치도 좋아한다.


사실 갈치는 나도 좀 좋아한다. 비싼 가격에 '그 가격이면' 하는 마음에 다른 음식을 찾을 뿐(엄청 좋아하진 않는다는 의미). 엄마는 전날 빨리 잠들었지만 나는 눈이 빠지게 근처 갈치집 후기란 후기를 다 찾아보았다. 그럼에도 100% 맛있다는 곳은 없었고,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곳에도 '양념이 안 베었다'거나 '그날그날 맛이 다르다'라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한 곳을 정해둔 채로 목욕탕에 가는 길에 기사님께 물어보았다. 기사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굉장히 신중하셨는데, 사실 다 거기서 거기라 고민하시는 거 같았다(이건 '맛은 다 비슷하죠?'란 질문에 '그렇죠~'란 답변으로 유추).


엄만 기사님이 추천해주신 곳에 서서 발을 떼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내가 가려던 곳에서 발을 떼지 않았고. 그렇게 대치하다가 내가 가려던 곳에 손님이 하나도 없어 그냥 엄마 쪽으로 갔다. 역시나 갈치맛은 놀랄 정도로 맛있진 않았다. 그냥 갈치조림이었다. 그러나 반찬은 또 괜찮은 편이었다. 미역초무침은 새콤달콤했고, 김치전도 심심한데 맛있었다. 그거면 됐지, 싶었다. 하긴 이날은 종일 온다던 비도 오지 않고, 날도 선선하니 좋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짧은 시간 안에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카메라를 협찬해준 짝꿍에게 정말 정말 고마웠던 하루였다). 엄마의 카톡 프사는 내가 찍어준 사진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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