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아줄

다시 짐 정리 중

스물다섯번째날(6/14)

by 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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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떠나올 땐 뭐가 필요할까, 생각하며 짐을 쌌다. 다시 돌아가야 하니 이제는 뭐가 필요 없지,를 생각하게 된다. 떠나올 땐 최대한 많이 담으려 했는데 이제는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다 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달살이를 하기 전에는 내가 얼마만큼의 쌀을 먹을지, 몇 벌의 속옷이 필요할지, 옷은 어느 정도로 준비해 가야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할지 따위를 대충 그려보려 해도 당최 잘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보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숙소에 터를 잡고 5kg들이 쌀을 샀지만, 반도 먹지 못했다. 속옷은 빨래를 자주 했으므로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날씨는 한 달 전보다는 확실히 더워졌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여전히 서늘한 기운이 돈다. 반팔에 겉옷 하나 있으면 충분한 정도가 돼 첫날 입고 내려온 니트와 니트 재질의 치마는 먼저 서울로 보냈다.


몇 벌의 속옷과 양말. 반팔과 민소매 형태의 원피스를 각각 하나씩 남기고, 긴팔 셔츠와 얇은 재질의 긴 바지도 남겼다.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많은 거 같기도 하다. 짐을 담아갈 가방이라곤 에코백 하나와 백팩 하나뿐이라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꼭 챙겨야 하는 노트북, 일기장, 파우치들만 남은 거 같아도 짐이 조금 많을 거 같기도 하다. 대형 돼지 인형도 챙겨야 하니까.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어떻게든 되는 것이 인생이니까.


아, 짐 정리에 큰 도움을 준 것은 '당근마켓'이었다(또 홍보 아닌 홍보를...).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과 한가득 담아 보낸 택배에는 첫날부터 매일매일 써야 했던 정말 필요했던 모기장과 쌀과 함께 샀던 만능 멀티팬을 비롯해 찬장에 넣어놓고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당면, 오뚝이 수프 따위의 식량이 있었다. 그걸 그대로 가져가자니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굳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을 거다(그 누군가는 짝꿍이다). 그런데 새것들을 버리고 가자니 그것 또한 굳이... 굳이..., 란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운이 좋았다. 짐도 덜고, 마음의 짐도 덜고. 이 글을 쓰고 있는 18일, 목요일. 모기장 등을 다른 분께 건네고 나면 짐은 더 줄 것이다. 그리고 저녁엔 짐을 조금 더 정리해야 할 것이다. 다음날엔 이곳을 떠나 애월 숙소에 며칠간 묵기로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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