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번째 날(6/20)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쩌면 추억은 모두 소중한지도 모른다.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닌 이상. 이번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시간'을 얻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나는 '좋은'까지는 아닌지 몰라도 '추억'을 많이 만들긴 했다. 그리고 어쩌면 마음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고(물론 그게 쉽지 않은 걸 알긴 하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걱정 때문에 떠나지 못하진 않았으니까). 나는 떠날 수 있었고, 떠난 덕분에 얻은 것들이 생겼으니 추억이 소중해질 수밖에.
흠, 이날은 몇 시에 일어났던 걸까. 이날 처음 찍은 사진에는 10시 42분이란 시간이 새겨져 있다. 적당히 늦장 부리다가 일어나 전날 가봤던 길과는 반대로 걷기 시작했다. 역시나 날씨는 끝내줬고, 제법 들떴던 거 같다. 아침 대신 에그타르트를 꿀꺽하고. 다시 앞으로, 앞으로. 낯선 길을 걸으며 설렐 수 있는 건 복된 일인 거 같다. 시간에 좇기지 않고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복된 일이리라. 날씨 좋은 날, 특히 여행지에서 펼쳐지는 햇살 좋은 날은 더더욱 복된 일이리라. 그러니까 제법 괜찮은 하루였던 것이다.
숙소에서 머지않은 곳에선 제법 센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이던 오리들도 만나고, 계속 제주바당길을 걷다가 문득 올려본 하늘에선 상공을 벗 삼아 날고 있던 백로도 보고.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걷다가 구엄포구와 구엄리 돌염전까지 본 후 해성도뚜리에서 토마토짬뽕도 먹고, 카페소금에 들러 커피까지 마신 후 다시 숙소에 가서 잠시 쉬어가기로.
찬찬히 걸어서 가는 길은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돌아가는 길은 택시를 타니 기본요금이 나왔다. 쉬었다 일몰을 찍기 위해 다시 나선 길도 쉬지 않고 걸어서인지 금방 도착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같은 길을 총 2번 왕복하고 나니 낯설던 길도 꽤나 익숙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전날에 이어 일몰 담기에 도오전.
찍기 어려운 일출보다 성공 확률 높은 일몰이 더 좋은 거 같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주던 일몰. 이 시간 즈음부터 다시 오징어잡이 배들이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다. 새벽에도 그 배들은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