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아줄

다시, 시작이다

마지막 이야기, 서른두 번째 날(6/21)

by 하얀

제주도에서 지낸 한 달은 매일매일이 예측 불가능했다. 뭘 보게 될지, 그리고 그를 통해 무엇을 느끼게 될지, 어떤 기록을 남길 수 있을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행은 '일상'이 되어갔다. 설렘은 계속됐지만, 설렘보단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과가 곧 이어졌고, 낯설던 풍경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며칠이 남지 않았을 땐 이 모든 게 아쉽게 느껴졌고,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애틋해졌다. 특히 서귀포를 떠나 판포리와 애월 돌고래 전망대를 찾았던 마지막 사흘은 다시 '설렘'이 넘쳐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주를 다시 찾은 짝꿍과 함께하니 좀 많이 신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한 달. 나에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특별한 날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씨가 화창했던 마지막 날 같은 하루. 사실상 우리가 자주 맞이하는 날이다. 좋은 순간은 늘 짧고, 아쉽다.


P1130159.JPG 날벌레를 잡아먹고 있는 제비들.

오전 7시 39분에 찍은 사진. 이른 아침 돌고래의 출몰 확률이 높다고 들어 이날은 모처럼 아침부터 서둘렀던 날이다. 아쉽게도 돌고래는 보지 못했지만, 서두른 덕분에 아침 사냥하는 제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짝꿍이 찍은 사진에는 날벌레를 잡아먹고 있는 게 선명하게 포착됐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짝꿍이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말해줘 알게 됐다.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조금 걷다 다시 숙소에 들어가 쉬다가 짐을 챙겨 밥을 먹으러 나갔다. 이곳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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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정갈했고, 식사 후 잡아서 탄 택시에서 달리며 맞은 제주바람은 상쾌했다. 조금 피곤했고, 짐을 짊어진 몸은 그보다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집에는 잘 도착했다. 도착해서 단 낮잠을 조금 잤던가. 그리고 다시 그랬던 것처럼, 한 달 전처럼 그보다 더 전처럼 그리고 지금처럼 우리는 불광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꿈만 같은 날들이었다. 선명한 날들, 선명한 장면도 있었지만, 벌써 아스라이 멀어진 것 같은 날들도 있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더 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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