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1. 귀염둥이
항상 그 자리에서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바닷가를 향하던 한결같던 길보다 더 한결같이 집을 지키고 있던 진돗개가 내게는 그런 존재였다. 물론, 비가 올 땐 잠시 실내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늘 같은 곳에서 자리를 지켜주던 녀석. 때론 조는 거 같고, 무신경해 보여도 낯선 사람이 숙소에 오면 기가 막히게 짖곤 하던 그러나 침입자가 아니라 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내 꼬리를 흔들어주던 똑똑한 녀석.
숙소에 도착했던 첫날 저녁. 어김없이 나를 보고도 숙소가 떠나가라 짖어댔지만, 다음날엔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얼굴엔 하트를 그리고. 사장님 부부는 모두 따로 이 진돗개가 얼마나 똑똑한지에 대해 자랑하시곤 했는데, 이 개 역시 사장님 부부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듯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개'의 모습은 주로 먹을 것에 관심이 많아 '먹이'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편이었는데, 이 개는 딱히 식욕이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달 내내 그래서 오히려 이 부분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외로운 듯 보였고, 사실 조금 많이 지쳐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긴 정을 준 사람들이 이내 떠나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것도 좋아하는 주인과 충분히 놀지 못하는 것도 슬프겠지. 어쩌면 그보다 주인이 한 번 바뀔 뻔했던 것을 버림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나오면 터벅터벅 걸어 나와 저렇게 스트레칭을 하고 이내 다시 앉아 버리곤 했다. 아주 처음을 제외하곤 제법 가까이 다가가곤 했는데, 워낙 힘이 좋아 발톱에 맨살이 긁히면 무지하게 아팠다. 경계가 없는 탓에 사람을 두 번만 보면 올라타고, 배를 까고 곧잘 눕곤 하던 녀석.
이렇게 앉는 개는 처음 본 거 같았는데, 저렇게 엉덩이를 철퍼덕 깔고 앉곤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자주 몸 이곳저곳을 박, 박 힘 있게 긁기도 하고. 생명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커서 한달살이 손님이 곧잘 들곤 한다는 숙소에 머물렀던 누군가는 나처럼 이 귀염둥이를 보며 안도감 같은 걸 느끼곤 했을 거다. 그만큼 한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는 존재는 묘한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계산적이지도 경계심을 보이지도 않는 모습도.
이곳 동네에선 제법 큰 개들을 쉽게 보곤 했다. 개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산책 나온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보기도 했고. 그 길에서 귀엽고 소심하던 이름 모를 또 한 녀석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무실 마스코트인 듯했는데, 잘생겼다. 처음엔 줄에 묶여있지 않아 조금 무서웠는데, 내 콧바람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모습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쫄보 면모를 확인하며 그렇게 마음을 열게 됐다는. 한 직원에 의하면 여자들만 따른다고 했고, 다른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했다. 확인된 바는 없다. 매일매일 볼 수 있을지 알았는데, 2주가량만 볼 수 있었던 개.
숙소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 주위를 둘러보면 그리고 눈이 마주치면 터벅터벅 걸어오곤 하던 녀석. 터벅터벅. 아직 그 소리가 선명하다. 재인이와 이 녀석 모두 내 가방에 관심이 많았는데, 재인이는 두서없이 막 냄새를 맡는다면, 이 녀석은 꼭 한 바퀴를 뺑 돌며 냄새를 맡곤 했다. 그래서 나도 이 녀석을 따라 덩달아 몇 바퀴씩 돌곤 했다. 빙글빙글. 바... 바보 같나?
처음 길가에서 마주쳤을 땐 먼발치에 떨어진 채로 서로 미동도 없이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다. 대치상황. 그러다 이 상황이 웃겨 조용히 웃느라 나도 모르게 낸 콧바람 소리에 놀라 줄행랑치던 녀석. 겁은 많지만 또 경계심은 적은 거 같던 녀석. 이래 봬도 동네 할머니가 매일 산책시키던 큰 개를 마주쳤을 땐 수컷끼리 서로 올라타려고 해서 놀랐다. 처음 보는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서열을 정하려고 그러는 거란다. 내가 알던 모습과 달라 놀랐었는데. 모두들 순해보여도 야생적 본능을 간직하고 있었다. 숙소 진돗개가 사장님이 준 빵을 숨기기 위해 땅을 파던 모습도 그렇고.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을 녀석들. 나는 다시 떠나왔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영원히 건강했으면 좋겠다. 고마웠던 귀염둥이들 늘 사랑받으며 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