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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29. 2020

행복했던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행복했다. 이게 진짜 행복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유 없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행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언갈 해서 기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들 없이도 기분이 좋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혹은 크리스마스 날에는 거의 누군갈 만났고, 만나서 특별한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보거나 여행을 갔고 호텔을 찾아 식사했다. 내가 그랬듯 상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걸 미리 준비해주고 의사를 물어주는 게 고마웠다. 그런 날 특별한 곳에서 마주치는 가족, 연인, 친구들도 항상 들떠있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거리에선 캐럴이 흘러나오고, 예쁜 트리가 반짝이고 있는데. 나도 한껏 들떴던 것 같다. 예쁜 조명 아래에서 열심히 셀카를 찍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런 날들도 충분히 행복했다. 함께여서 행복했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코로나 때문에 특별한 날을 예전처럼 즐길 순 없었다. 그런데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용히 엄마, 아빠와 마주 앉아 치킨을 먹는 것도 소소한 기쁨을 느끼게 했다. 생각해보니 올 크리스마스엔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 보지 못했다. 흠 갑자기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그래도 행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단 생각도 든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마음만은 충만한 하루였다.


 불티나게 팔렸다는 케이크 관련 기사를 봤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 선 남자 사람들도 봤다. 올해는 주로 가족 단위로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았을까. 거기엔 조용한 행복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브날 밤부턴 '산타 어플'이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누군가 올려놓은 사진을 보며, 잠든 아이와 합성된 산타 모습을 보며 함께 행복했다. 코로나 때문에 산타가 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던 아이들은 안도했을까. 벅찬 행복은 아니었으나 부족함 없는 행복이었다. 이런 날들이 내 삶과 내 이웃의 삶에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부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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