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닐 때였다. 후배를 괴롭히던 A와 B란 선배가 있었다. 나의 동료였던 그 후배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그 선배들도 차례대로 퇴사와 이직을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C 선배가 재입사를 했다. 선배들은 C 선배가 퇴사를 한 건 A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A가 뒷담화를 하는 것을 당사자인 C가 직접 듣게 됐고, 그 후 바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크게 놀랐고, 그걸 A도 알고 있었을까 당혹스러웠다. 자신 때문에 그만둔 사람이 있는 걸 알고서도 훗날 또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니... 이 생각을 참 오래도록 해왔다.
그런데 이젠 그들의 생각을 알 것 같다. 그들은 자신 때문에 후배가 그만뒀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후배가 선후배 문화를 몰라 조직 생활을 버티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을 거다. 아니, 그보다 원래 그만둘 애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C 선배가 그만뒀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A에게 C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사회생활을 못해서였을지 모른다. 자신의 하대나 뒷담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는 후배들의 잘못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해자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 건 정인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통해서였다. 정인이의 양모는 "때린 적은 있지만 뼈가 부러질 정도로 때리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완벽한 가해자의 입장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피해자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모르는 것이다. 그들에게 잘못은 피해자에게 있다.
조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조카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오빠는 야단을 치기는커녕 화 한 번을 내지 않았다. 조카가 자신보다 더 큰 화분을 깼을 때도 묵묵히 뒷수습을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언젠가 아빠가 오빠를 가리키며 어떻게 저렇게 화를 한 번 안 내지, 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아직 모르니까요.
그 나이 때의 아이는 훈육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눈치를 볼지는 알지만, 말귀를 잘 알아듣지는 못한다. 정인이가 15개월이던 그때는 아이를 야단쳐도 부모의 뜻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동학대의 가해자들은 모르는 것이다. 양모였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불쌍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화를 내며 음식을 씹으라고 소리쳐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녀에게 학대의 이유는 정당했을지 모른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서, 말을 듣지 않아서,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완벽한 가해자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잘못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완벽한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길 바란다. 피해자 탓을 하지 않길 바란다. 처벌은 그다음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오열하던 과거와 같이 억울해만 할 테니까. 그런데 과연 그들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