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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Apr 01. 2021

시작과 끝

 집 앞에 집을 짓는 까치를 볼 때마다 거슬리던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까치집 앞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이었다(교묘하게 까치와 까치집을 가렸다). 입춘이 지나서도 떨어지지 않던 나뭇잎들을 보며 쟤네들은 언제 떨어지나 손꼽던 날들이 있었다(나뭇잎아 미안해). 지금 그것들은 떨어졌지만, 서울시내 곳곳엔 아직도 잎을 떨구지 않은 나뭇잎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언제 떨어져 꽃과 새잎을 틔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잎을 떨어뜨리지 않던 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다. 베란다 쪽 나무였다. 그게 벚꽃 나무인 것도 잊고 있었다. 새소리가 들리면 가끔씩 새 구경을 하다가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을 살펴보곤 했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고,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하, 벚꽃 나무 잎이구나. 조금씩 몽우리를 터뜨리는 꽃을 보며 살펴보던 나무가 벚꽃나무임을 알았다. 사실 더 정확하게 안 것은 "벌써 벚꽃이 꽃을 틔우려나 보네"라고 거실에서 읊조리던 아빠의 말 덕분이었다(그렇다. 사실 나는 꽃에 별 감흥이 없다). 지난 가을부터 그곳에 있었을 가을 나뭇잎. 꽃을 막 피우려던 23일 꽃봉오리 옆에도 그 나뭇잎이 있었고, 활짝 꽃을 피운 지난 30일에도 나뭇잎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만우절인 4월 1일 오늘도 아직 있다. 그것도 꽃잎들 사이에서 어여쁜 모습으로.


 그러고 보면 시작과 끝의 경계도 참 모호한 것 같다. 왜 계절의 경계도 그러하지 않은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무렵. 절기상 입춘은 지난 2월4일이었다. 하지만 추위를 많이 느끼는 나에겐 3월도 봄이 아닌 봄으로 가는 길목처럼 느껴진다. 내가 봄이라고 느낄만한 봄은 꽃이나 새싹을 틔우는 시기보다 온연히 따뜻한 하루를 의미한다. 그게 나에겐 봄이다. 


 봄을 상징하는 꽃,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잎. 계절의 시작을 상징하는 꽃, 나무 식물의 끝을 상징하는 가을 혹은 겨울 나뭇잎. 그들의 공존이, 생명의 신비가 놀랍다. 


 아직 벚꽃잎이 다 피지도 않았는데,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들이 시선을 끄는 날이다. 봄의 시작을, 봄의 끝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작과 끝의 공존. 끝난 듯 끝나지 않은 지난 가을의 나뭇잎처럼 당신이 굳세었으면 좋겠다. 


지난달 23일 벚꽃이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30일. 일주일만에 꽃을 틔운 벚나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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