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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Apr 04. 2021

밤의 풍경

쫄보도 자란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어마어마한 쫄보였다. 어린 시절 벌레, 귀신, 취객, 무서운 선생님 등 온갖 것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곤 했다. 그중에서 '밤' 역시 빠질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깊고 짙은 어둠이 깔리면 온갖 괴담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그 밤에 그림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날들이 떠오른다. '혹시 난 혼잔데 그림자가 두 개라면...' 이런 생각을 하며 굳이 굳이 그림자를 확인하거나 굳이 굳이 그림자를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니 밤의 풍경을 느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밤 자체가 무서웠던 기억도 많다. 어둠이 일찍 내려앉는 시골. 가로등 역시 드문드문 있는 그곳에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후레시'가 필요했지만 그냥 느낌에 의지해 걷는 경우도 많았다. 시골에서 빛의 영역은 한정적이라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두려움을 어린 쫄보가 감당하기란 얼마나 어려웠던가. 그래서 가로등이, 어렴풋한 빛이 나타나기까지 나는 깡충깡충 뛰어다니곤 했다. 


 그래도 꽤나 경외로웠던 어느 밤도 있었다. 아마 여름날 방에 모기약을 잔뜩 뿌리고 할머니와 바깥으로 나와있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려고 잔뜩 눈에 힘을 주고, 벌레라도 밟지 않을까 몸을 오들오들 떨다가 나도 모르게 그 고요한 밤에 익숙해졌던 그 느낌. 할머니가 어딘가를 보는 것 같아 나도 그즈음에 시선을 두었던 기억. 돌아가는 길 발걸음을 따라 적막을 깨우며 밤 풍경을 채워나가던 자갈 밟는 소리까지. 그 밤들을 지나 어른이 되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인적이 드문 밤거리는 걷기는 여전히 망설여지지만, 쫄보도 성장한 것인지 요즘엔 밤을 수놓는 은은한 불빛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벚꽃 역시 어둠을 밝히듯 은은한 자태를 뽐내는 밤에 보는 것이 더 특별해 보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며칠 전 군것질 거리 좀 사볼까 싶어 나선 산책길에서 무척 낮게 날고 있는 비행기를 마주쳤다. 아니 이게 무슨 게임의 한 장면 같은 일인가(배틀크루저인 줄), 하며 거북이처럼 고개를 움츠렸던 것도 잠시. 오호라, 횡재로다, 를 외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2분 단위로 모습을 드러내다 길게는 10분을 기다리다가 찍곤 했던 비행기의 비행 모습을 보며, 해가 진 시간의 풍경으로부터 안도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둠을 하루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그 풍경 속에서도 빛나던 무엇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모두 그 빛을 잃지 않는 밤을 지켜나가길 바라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지난 31일 저녁 낮게 비행하는 비행기의 모습.

++


지난달 28일 불광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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