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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Apr 14. 2021

빛의 시작: 어둠이 시작될 때

남산서울타워

 길을 걷는데 순간 환한 불빛이 쏟아졌다. 가로등이 켜진 것이니라, 올려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불이 켜지자 약간의 어스름도 사라졌다. 옅은 미소가 지어졌고, 안정감이 들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불빛을 좋아할까.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일까. 밝은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까. 아니면 늘 거기 있어주는 존재에 대한 보답인 것일까. 


지난 5일 고개만 들면 어디서든 햇살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작년 봄 길 위에서 만난 '100 인생 그림책'에는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의 힘'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인생이 외롭지 않다면 혹은 조금은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만족할 만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덕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힘, 누군가로부터 지지받는 힘을 주는 관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좀 더 어렵지 않게 삶에 생기를 주는 법도 있을 것이다. 햇볕이든 불빛이든 주변의 '빛'을 찾는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자연 혹은 빛을 찾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길 중 하나인 것이다. 어느 봄날 빛을 찾아 남산서울타워로 향했다.


계단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만난 꽃비. 


 최종 목표는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것인가, 조금 힘이 들더라도 천천히 주변 경관을 즐기며 올라갈 것인가에 대해 일행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걷기로 했다. 이날은 힘들여도 좋을 길을 걷기로 했다. 도보로 남산서울타워에 오를 경우 남산도서관 출발 기준 30분, 삼순이 계단 출발 기준 4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공식 홈페이지 참조). 충무로역이나 동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다. 내려가는 건 쉽지만, 올라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과 체력을 요하니 잘 따져보는 것이 좋다. 


 빛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전 후기를 찾아보니 그곳엔 아직 벚꽃이 다 피지도, 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비 오던 주말을 경계로 주변 벚꽃들은 이미 대부분 진 상황이었으나 아직 남산 꽃들의 생은 진행 중인 듯했다. 남산 아래쪽 벚나무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들을 흩날리고 있었다.



 걷고 쉬고, 걷고 쉬고를 반복하며 만난 건 꽃과 나무, 새와 같은 자연 속 생명체였다. 너 거기 있냐, 나 여기 있다. 혼자 속으로 외쳐보아도 방문객들이 익숙해서 인지 새들은 사람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길에서 만난 까치 두 마리는 각자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집 보수에 필요한 물건을 찾는 중인지 솜털을 대신할 만한 지푸라기를 연신 부리로 물어 나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사랑의 자물쇠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진심 어린 바람을 지나 힘든 순간까지도 함께하길 바라는 커플의 애틋한 마음까지 확인한다면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좋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면 40층이 넘는 계단을 걸어올라 간 셈이 된다(걷기 어플 참조). 숨이 차는 것을 핑계 삼아 풍경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걷기에 좋은 길이다. 다행인 것은 곳곳에 벤치가 있어 마음껏 앉아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경관은 물론 우연히 마주치게 된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 운동 삼아 열심히 계단을 뛰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도 걷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 개나리꽃, 흩날리는 벚꽃을 사진기에 담으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햇빛까지 포착할 수 있다. 그 햇살을 받고 있는 게 어디 꽃뿐만이었으랴.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햇살의 호의가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은 훗날 길에서 만난 가로등 같았다. 펑, 하고 켜지던 가로등. 빛의 호위를 받는 순간과 다르지 않았다.


어슴푸레 어둠이 찾아오자 또 다른 불빛들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목적지에 다다라 간단한 요기를 했다. 요기 후 전망대에 오르기 전 바깥 풍경을 잠시 감상하며 어슴푸레 어둠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하나, 둘 불빛들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사라지지 않고 반짝이는 불빛이 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 여기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황홀경이 마음에 퍼져나갈 때쯤 문득 빛의 시작은 언제일까,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어둠이 시작되는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야경을 수놓던 불빛들이 꺼지고 달이 밝아오는 시간일까. 그러다 아무렴 어떠랴 싶은 생각이 든다. 빛은 발견되는 그 시점부터 생명력을 얻게 되리라. 


 새어 나오는 한 줌의 빛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깨닫는 것이 인간이다. 희망이 없다면 용기로 살아라. 어떤 이가 남긴 댓글을 한동안 인용하고 살았다. 걸을 용기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당신이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새어 나오는 한 줌의 빛을 찾아내길 바란다. 빛은 기꺼이 그 길을 동행해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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