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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Jul 13. 2021

이중섭, 생애 가장 따뜻했던 시간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리는 제주도. 이 섬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아름다운 풍광 속 ‘햇살’이다. 때로는 포근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을 감싸 안아주는 햇볕. 한 예술가의 삶 깊숙이 온기를 전하던 서귀포의 햇발을 따라 가보고자 한다.     


#1.4평의 낙원     


 소, 물고기, 게, 닭, 어린이, 가족 등 한국적 소재를 작품화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중섭.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익살스럽기까지 한 그림과 달리 그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종이를 살 형편이 안 돼 담배 포장지인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고, 물감 대신 송곳이나 못, 손톱 등으로 날카롭게 화폭을 파고 들어가던 이중섭. 그에게 창작의 끈을 놓지 않으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가난 그리고 외로움과 홀로 싸우며 끝까지 그림 그리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6·25 전쟁 탓에 본래 살고 있던 원산을 벗어나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이주, 정착해 산 11개월.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이 시기는 이중섭 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 <길 떠나는 가족>에는 이들의 기쁨과 설렘이 잘 담겼다. 이에 대해 평론가 오광수는 “정든 고향을 버리고 가는 슬픈 이주가 태반이지만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은 즐거운 소풍 놀이라도 가듯 흥에 겨운 이주로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향해가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지상의 낙원으로서의 따뜻한 남쪽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평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학 생활까지 할 수 있었던 그의 생활은 전쟁 발발 후 급격하게 기울어갔다. 1.4평. 서귀포에서 그가 두 아들과 부인과 함께 지낸 방 한 칸은 네 가족이 편히 두 팔과 다리를 뻗고 자기에도 비좁아 보인다. 그러나 부산보다 따뜻한 기후와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 거기에 아름다운 풍광은 가족이 결속력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결국 이 시간은 자양분이 되어 그의 작품에 생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그는 이때를 가족들과 헤어진 후 평생에 걸쳐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운 제주도 풍경     


 좋은 기억은 늘 그리움을 남긴다. 이중섭 거주지, 미술관으로부터 조금만 걸어 나가면 <그리운 제주도 풍경>의 배경이 된 ‘자구리해안’을 만날 수 있다. 이 바닷가에서 이중섭 가족은 함께 꽃게를 잡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이들은 꽃게를 잡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를 보며 행복에 잠긴다. 그리고 이 행복한 날들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다. 실제로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던 이들 가족은 바다로 나가 꽃게나 조개 따위를 잡아 상에 올렸다고 한다. 이중섭 작품에 꽃게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 대해 후에 그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게들의 넋을 그리기 위해 그린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빈손으로 시작한 제주 생활. 그들이 서귀포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 현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중섭 거주지는 자신의 초가집 방 한 칸을 내준 주인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마련돼 유지되고 있다. <서귀포의 환상>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숨은 조력자 덕분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귤을 따는 아이와 새를 타고 날고 있는 아이,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 등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이들의 행복한 일상이 새겨졌다.


 티 없이 깨끗한 바다와 주변 경관을 감싸던 서귀포의 햇살도 그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잊게 해주었을 것이다. 이웃들이 그들 가족을 품어주었듯 햇살 또한 그들을 온기로 품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밝은 빛을 이중섭은 아이들과 가족, 물고기와 게 등을 통해 작품에 담아낸다.


 바닷가에서 그는 몇 번의 노을을 지켜보았을까. 이중섭거리 구석구석을 걸으며, 사흘 동안 자구리해안가를 걸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난과 역경을 뛰어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는 건 사랑의 힘 덕분이었을까. 비운의 삶을 살다간 예술가가 아닌 아름다운 풍광과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 사람 이중섭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등 12개 작품이 이중섭미술관에 기증돼 오는 9월엔 특별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작품을 감상하며 이중섭을 추억해보길 추천한다.     


#지금, 이곳의 유토피아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테마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 이중섭 거리에는 향초, 액세서리, 제주도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소품샵부터 디퓨저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까지 즐비해 있다. 특히 이 일대는 ‘작가의 산책길(유토피아로)’로 관광객들은 물론 도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이 길은 이중섭공원을 시작으로 기당미술관, 칠십리시공원, 자구리해안, 서복전시관, 소암기념관까지 이어진다. 총 4.9㎞. 넉넉한 걸음으로 3시간 안팎 걸리는 거리를 걸으며 예술가들의 혼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을 떠나기 전 작가의 산책길 종합안내소에 들러 나침반 역할을 해줄 지도를 먼저 챙기자. 출발하기에 앞서 후배 작가들의 작품과 산책길 코스 안내 영상, 사진 등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 코스를 짜는데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유토피아로’라고도 불리는 길 곳곳을 걸으며 상상해보자. 개교 100주년을 넘긴 서귀포초와 자구리해안 등을 살피며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걸었을 그 길을. 그 길 이후 후배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서귀포를 확인해보자. 담장과 벽, 길바닥, 표지판 등 거리 곳곳엔 예술가들의 작품이 새겨져 있어 마을 곳곳이 커다란 미술관처럼 느껴질 것이다. 


 운이 따른다면 칠십리시공원에서 연못에 비친 한라산을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낮과는 또 다른 넉넉한 밤 풍경을 그려내는 자구리해안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작품을 감상해보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공연이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나만의 낙원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뭘 보냐옹.
구름, 구름, 뭉게구름.
구름, 구름, 연못 속 구름.
소남머리에서 바라본 바다.
소남머리 족욕탕.
자구리해안에서 바라본 서귀포항.
꽃게랑 닮은 꽃게.
존맛탱이지만 너무 비싸던 하루비ㅠㅠ
숨은 개 찾기. 갑자기 물에 풍덩 뛰어들어서 깜놀. 다이빙 실력이 하루 이틀이 아닌 듯.
신나게 개 헤엄치는 중. 담수욕장 말고 바닷가 쪽으로도 살짝 나가서 헤엄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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