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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Jul 15. 2021

사람다움

이중섭을 생각하며

 이중섭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그의 부인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게 됐다. 이중섭이 게(겡이) 그림을 많이 그린 것에 대해 그의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제주도 시절 어찌나 먹을 것이 부족하던지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게나 조개를 잡아서 먹었는데 남편은 그것이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 죽은 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게를 그린다고 말하곤 했지요.”라고 당시의 곤궁한 상황을 회상했다.(제주환경일보 기사 중)


 이 이야기를 듣고 이중섭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런 그가 전쟁에, 가난에, 가족과의 이별을 견뎌내긴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론 낙천적인 성격이었다는 말도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그림에도 그러한 동화 같은 상상력이 잘 드러나긴 하지만, 그의 말년이 좋지 않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영양실조와 정신이상 등으로 고생하다 무연고자로 영안실에 며칠 동안 방치되기도 했다는 그의 마지막. 하지만 이것 또한 그의 이야기 중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의 밝던 그림은 나중엔 어둡고 우울한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중섭이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의 삶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불운한 삶을 살다 간 예술가라는 데에도 있는 거 같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삶이 뜻대로 이뤄질 수 있다면, 이중섭은 훗날 자신의 작품이 높이 평가되어 유명세를 얻는 것보단 그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지 않았을까. 서귀포에 가게 되면, 이중섭거리를 걷게 되면 늘 그가 가장 행복했을 모습을 그려본다. 그에게 서귀포에서 지냈던 11개월의 시간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꼽혔다고 한다. 따뜻한 햇살을 받는 그를 상상하며 그 시간들만큼은 정말 평안했기를 상상하며 그의 삶을 추모한다.




이중섭 作 서귀포의 환상. 이중섭미술관에서 산 엽서 캡처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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