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에서 자본국가로
미국의 전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으로 4년 만에 다시 선출되었다. 이 사람의 재집권을 앞두고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기업이나 주식시장은 환호하는 반면, 유럽이나 아시아, 중남미 지역은 다가올 국제질서 파괴나 무역규제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The Economist는 앞으로 4년간이 악인통치(kakistocracy)의 시기일 것으로 보고 있다.(1)
꾸준히 악화되어온 소득불평등
트럼프는 정통 정치인이 아니다. 부동산 사업가로서 TV엔터터이너로 변모해 대중적 인기를 모아 갑자기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다.
공화당, 민주당이 서로 번갈아 통치해오면서 지난 50년 동안 미국내 소득격차는 점차 벌어져 21세기 들어 최악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힘입어 개발도상국과의 교역이 확대되고 기업들은 사업이 번창하고 이익이 늘어났다. 이와 동시에 국제경쟁력을 잃은 미국의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어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처우가 악화되었다.(2)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는 미국의 거대자본과 기성 정치권이 결탁한 정책 때문에 빚어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미국 정치계로 트럼프가 파고들어 성공한 근본 원인이 바로 미국의 극심한 계층간 소득격차 문제이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 1기 동안 소득격차가 어떻게 되었을까? 2016∼2019년에 지니계수가 계속 상승하다가 코로나-19 기간에 재난지원금 살포 때문에 2020∼2021년에 일시적으로 낮아졌다.(3) 즉 그 당시 저소득층의 소득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는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 저소득층은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자본에 예속된 미국 정치
이미 미국은 자유∙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자본주의에 중독된 기형적 나라이다.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정책들이 대기업, 첨단기업이나 거대자본들을 위주로 만들어졌다. 각종 선거도 양당이 부자∙대기업들로부터 거액 기부를 받아 치른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필라델피아 주에서 매표행위를 했다.(4) 이러한 일들은 유권자의 ‘1인1표’를 훼손하고 ‘1표당 x달러’로 치환하는 심각한 문화이다. 이에 대해 필라델피아 주 검사가 수사를 개시했지만 트럼프의 당선으로 유야무야할 것 같다. 이일을 다스리지 않고 그냥 넘기면 앞으로 미국의 선거에서 매표 행위가 만연할 것이다.
트럼프의 2016∼2020년 재임기간에 그의 가족들이 백악관 내 관료로 활동하거나 사업에 각종 이권을 동원하기도 했다. 역시 이번에도 며느리가 공화당 당비관리책임자가 되고, 아들이 정권이양 과정과 내각∙참모진 인사에 관여한다고 한다. 선거 유세 중에도 기념품을 팔아 본인과 가족들이 돈을 벌었다.
당면한 생활고가 트럼프를 재소환
이번 선거 승리는 미국의 저소득층을 기만하여 얻은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 저소득층의 삶은 트럼프 1기 내내 악화되다가 코로나-19 때 엄청난 재난지원금을 받아 개선되었다. 그러나 받았던 재난지원금이 바이든 집권 뒤 차차 고갈되면서 이들은 다시 팍팍한 삶으로 되돌아 갔다. 트럼프 승리의 원동력은 바로 공짜로 얻은 재난지원금이 바닥난 저소득층 미국인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에서 생긴 것이다. 게다가 팬데믹 때 초저금리와 재난지원금 살포에서 비롯된 막대한 유동성이 물가를 끌어올려 이들의 삶을 더 어렵게 했고, 이에 따른 기득권에 대한 불만이 이번에 트럼프와 공화당의 완승으로 이어졌다.
본인과 가족의 이익을 우선할 트럼프 2기
내년에 시작되는 트럼프 2기 정부가 미국을 통치하면서 과연 국익을 우선할까? 트럼프는 미국의 자소득층을 위해 통치를 하는 지도자가 아니며, 틈만 보이면 공적 사업에서 자신과 집안 식구의 사익을 뽑아내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은 모든 공무원이 자기의 공적 책무를 우선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본인의 사익과 공익이 일치하기를 바라고, 일치하지 않을 때는 자기의 사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트럼프는 그런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은 흔히 국가, 인류를 위한 봉사∙박애를 겉으로 표방하지만 진정으로 그런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는 오죽할까? 은행을 속여 대출을 많이 받고, 무리한 흥정으로 상대를 벗겨 먹는(rip off) 상술을 자랑하는 사람인데.
또한 트럼프를 도운 거부 일론 머스크는 돈으로 표를 끌어모아 트럼프 당선을 도왔다. 그리고 앞으로 트럼프의 통치는 앞의 여러 정부와 마찬가지로 거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다. 이는 미국 정치나 경제의 도도한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미국은 이제 ‘1인 1표’의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1표당 x달러’의 자본주의 국가이자 금권주의 국가로 바뀌고 있다.
세계적 우경화 속에 어떻게 생존하나?
전 세계가 트럼프가 미국우선주의를 추구하면서 미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거나 정치∙군사적으로 도움을 받는 나라나 기업을 착취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와중에 눈치 있는 국가∙기업은 예외일 것으로 생각한다. 트럼프는 대통령이라는 공직을 자신의 비즈니스로 규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길은 우선 대미 정책의 초점을 트럼프나 그 가족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맞춤으로써 열릴 것이다.
사실 이러한 빈부격차 확대에 따른 경제∙사회의 불안 확대와 이로 인한 자칭 반보수 세력의 정권 장악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이민이나 난민이 본토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한다며 폭동이 일어나고 이에 기대어 극우주의자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역시 소득격차 심화와 부동산가격 폭등 문제가 우파 정권을 탄생시켰으나, 요즘 국민을 물론 지지층에게 큰 실망을 안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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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Economist, ‘Espresso’, ‘Word of the week’, 2024.11.09.
(2) 인천투데이, ‘OECD 빈부격차 50년... 미국 심화, 유럽 완화, 한국은 중간', 2024.07.25.
(3) FRED, ‘GINI index for the United States’.
(4) 한겨레, ‘보수 유권자에 13억 주는 머스크…법원 계속해도 돼’, 2024.11.05.